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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글의 자리(Side B)

온도적정 북쪽 하늘을 면한 작은 방, 옥탑은 아니되 가장 모서리의 방, 그러니까 가장 날카로운 방. 하늘을 찢고 들어가는 방에서 5년이 지났다. 그 중 3년은 방에서 살지 않았으니 아직 낯설다. 여전히 방에서는 잠만 잔다. 날이 가도 밤은 항상 추웠고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독일어에서 말하는 'Es zieht'(직역하면 It pulls)가 바로 이렇게 외풍이 들어오는 상황이다. 누가 무엇을 당기고 있길래 바람은 쉴새 없이 스며드는가. 와류는 구석에 몰린 채 언제든 벗어날 기회만을 노렸다. 겨울바다를 꿈꾸는 것들이 허공에서 헤엄치다가 따뜻한 곳에 끌려 옹기종기 모였다. 공중을 헤엄치는 상상, 아주 오래된 류의 상상이지만 해본지도 오래된 상상이다. 공기는 충분한 부력을 제공하지 못하고 중력의 눈은 매섭다. 어찌하여 .. 더보기
배설을 너무 오래 지연하였기 때문에 배설하고자 한다. 그때 우리가 꾼 꿈은 무엇의 꿈이었을까? 꿈이란 어떤 식으로 정의할 수 있는 세계란 말인가. 꿈이란 형식만 정해져 있고, 내용은 변화무쌍하다. 순간적으로 고정해서 볼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어떠어떠한 꿈을 가졌다고 말할 때 그것은 꿈의 사진을 찍은 것과 같다. 실제 꿈이 가지고 있는 내용은 그 순간에 변화하고 있다. 배설을 통해 우리는 일단 쓰고자 했다.지면이 필요했다는 말이다. 개인 블로그여서는 안 되는 거였나. 그나마 쓸만한 티스토리 블로그는 연결성이 낮은 까닭에 개인 블로그로는 고독했을 것이다. 대화가 안 되면 대화의 시도라도 되어야 하는데 개인 블로그는 독백이고 잘해야 방백이다. 익명의 독자도 좋지만,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글을 읽어준다는 것이.. 더보기
말과 행동 말의 뜨거운 함정. 성탄절이다. 부대의 밤에는 성탄이 없다. 금요일 퇴근하면서 나는 그저 좋은 주말 되시라는 말을 했다. 성탄절은 대체로 잊혀진 분위기다. 물론 종교 시설은 다르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미사에 참여하여 인간의 미천함에 대해 생각했다. 신부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어느 수녀님이 잠자리에 들려 하는데 새가 창문에 와 부딪혀 떨어졌다. 가서 도와주려는 마음에 손을 가까이 하니 도망치더란 것이다. 이 손길이 새에게는 더욱 무서운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내가 새였으면 도와줄 수 있었을텐데, 아쉬워하면서 그냥 돌아왔다.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리하여 헐벗은 아기의 모습으로 구유 위에 누워야 했다.(구유를 잘 모르는 우리는 낭만화하겠지만.. 더보기
이런 날에는 들까부르고 싶다 비가 밤 종일을 새워서 내리다가 그친 날에는 버스를 타고 싶다. 버스를 타고 죽어라 멀미를 하며 버스로 갈 수 있는 길의 끝까지 가보고 싶다. 내리고 싶어도 내리지 못하고 포장되지 않아 나를 위 아래로 흔들어대는 길의 감촉을 전정기관으로 느껴보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하고 싶은 것들 투성이,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싶은 것들. 하늘 한 구석에 스크린을 세워 두듯이 파란 하늘이 잔존하다가, 마침내 온 누리를 뒤덮은 시간이면 아직 따사로운 햇볕을 올해의 마지막처럼 즐긴다. 여름 내내 사용되어 다 낡아 떨어진 볕이 그래도 따끔하다. 아직은 살아있거니, 한다. 왼쪽 뺨이 뜨거운 것은, 커피를 마셔서라고 핑계대어 본다. 산은 구성진 노랫가락처럼 흘러가다가, 모이기도 하고, 다시 흩어져서 제 갈길 가.. 더보기
생각하지 않고도 쓸 수 있다면 딱딱한 글을 쓰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문장은 50자를 넘어가면 안 될 것 같고, 문단은 반드시 나뉘어야 하며, 각 문단별 소주제가 확실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규칙을 지키다보면 글은 놀라울 정도로 재미없어진다. 그것은 읽는 이가 어떠한 반전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다음에는 무슨 문장이 나올지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생각만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생각을 벗어난 세계의 논리는 어렵다. 그 세계에는 생각으로 해결가능한 논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조직된 논리가 작동한다. 굳이 이렇게 표현하는 까닭은, 그 세계가 비록 이성적이지는 않아도 그 자체의 충분한 논리를 가지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감성의 논리, 영성의 논리. 마음과 영혼. 육신과 정신. 하늘과 땅. 영화 의 주인공은 위.. 더보기
[10분간 글쓰기] 욕망의 유예 문득 떠오른 주제를 가지고, 오직 10분만의 시간을 가지고, 그냥 이 키보드와 나 둘이서만 글을 써보기로 했다. 습관처럼 하던 페이스북, 잡념, 검색 엔진 모두 안녕. 옛날 글을 쓸 환경이 되었을 사람들에게도 방해 요소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길거리를 달리는 마차의 방울소리라든지, 유난히도 시끄러운 유모의 기침소리라든지.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유혹이 될 만한 것들이 너무도 많다. 여분이 너무 큰 나머지 본질을 침해한다. 나는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기 위해 단 10분간의 유예를 허락하기로 했다. 이것은 유예다. 내가 입고 있는 옷으로부터, 나를 둘러싼 공기로부터, XX으로부터. 결코 해방이 아닌 유예. 유예는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얼마든 처할 수 있는 하나의 '상황'이다. 아무리 마음을 가볍게 먹은.. 더보기
금식 기간 동물들은 다치면 금식을 한다고 한다. 그럴 듯 한가? '한다고 한다.' 당초 동물들의 금식에 관해 관심이 생겨 검색을 해보니,(얼마나 편리하고도 신뢰성 떨어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동물들의 금식은 마치 관용구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금식을 찬양하는 이들이 왜인지 글머리에 꼭 꺼내는 이야기가 바로 동물들의 금식 이야기였다. 실제로 그들이 강조하려는 것은 금식을 통한 다이어트거나 건강 고양이거나 영적 충만을 추구함이었다. 동물들은 여기에서마저 이용당하는 신세였다.그나마 가장 관련이 있는 내용은 수술 받기 전에 동물들에게 금식을 시켜야한다는 것. 인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통용되는 상식이니 그냥 넘어갔다. 외국 웹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google에 animal fasting이라고 쳤더니 animal t.. 더보기
未開 학교 생각을 하면, 사실 중학교 생각은 거의 나질 않는다. 이미 지나간 지 오래되어서 내 머릿속에서 정리되고 취사선택된 장면들만 가지런히 떠오를 뿐이다. 오히려 전혀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다가 관련된 사건이 머릿속 어딘가에서 둥그러니 떠오를 때가 있다. 이 시를 쓸 때 나는 중학교 생활을 하며 받았던 느낌을 살리려고 했지만 막상 떠오르는 건 고등학생 때의 시간이었다. 아무런 일도 없이(그러나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지나간 듯 장면들조차 갈무리되지 않은 고등학교의 나날이 내겐 더 가까운 학교의 이미지다. 그 시절, 무지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未開 안개를 밟고 학교에 오를 때면언덕이 힘껏 종을 쳤다 뎅겅 고개 숙인 명찰의 돌출빤히 그것을 응시하는 취미 아침마다 청소를 하면 깨끗하다마치 표백된 파랑새.. 더보기
피로가 묻어있는 생활관. 즉 집단 거주 시설. 복도는 쭉쭉 뻗어나가고 가지를 쳐 나가듯 방들이 복도에 매달려있다. 폐포가 폐 혈관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모양 같다. 부지런히 숨을 쉬는 가련한 생명들이, 대체로 누워서 혹은 어쩌다가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이곳의 생활은 어떤 생활일까. 철저하다기보다는 처절한 생활, 매 순간 생과 활의 의미를 잃어가면서도 생과 활의 현재를 뼈에 사무치게 느끼는 생활이다. 그래, 하지만 이것은 종을 위한 헌신이다. 꿀벌들에게 집이 갖는 의미가 아마 비슷할 것이다.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꿀벌들이 집에 대해 낭만적인 인상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유전자가 시키는 대로 수백 km를 떨어진 곳에서도 벌집으로 돌아올 수 있고, 벌집이 공격받으면 개개인의 목숨을 버려 전체를 구.. 더보기
[짧은 글] 삶 편향 우리의 이야기에는 삶에 대한 편향이 있다. 불가피한 경사(傾斜)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살아있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도 이미 삶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산 자들이 이야기하는 죽음과, 죽은 자들이 이야기하는 죽음은 다를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대중에게도 잘 알려져버린 작가 한강의 최근작 는 삶에 대한 편향을 벗어버린 글이었다. 살아있는 자만이, 아니면 유령처럼 준-살아있는 존재만이 발화하고 행동하고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대신에 죽은 자를 적극적으로 포섭했다. 영화 도 그러했다. '경주'는 무덤이 되어버린 도시다. (실제 대한민국 경주시에 사는 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한 발언이지만, 최소한 영화 속 '경주'는 그런 곳이었으니 양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