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생각을 하면, 사실 중학교 생각은 거의 나질 않는다. 이미 지나간 지 오래되어서 내 머릿속에서 정리되고 취사선택된 장면들만 가지런히 떠오를 뿐이다. 오히려 전혀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다가 관련된 사건이 머릿속 어딘가에서 둥그러니 떠오를 때가 있다.
이 시를 쓸 때 나는 중학교 생활을 하며 받았던 느낌을 살리려고 했지만 막상 떠오르는 건 고등학생 때의 시간이었다. 아무런 일도 없이(그러나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지나간 듯 장면들조차 갈무리되지 않은 고등학교의 나날이 내겐 더 가까운 학교의 이미지다.
그 시절, 무지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未開
안개를 밟고 학교에 오를 때면
언덕이 힘껏 종을 쳤다 뎅겅
고개 숙인 명찰의 돌출
빤히 그것을 응시하는 취미
아침마다 청소를 하면 깨끗하다
마치 표백된 파랑새처럼
담을 타고 불그죽죽 흐르는 꽃
개와 이리의 벽돌 탈의실
빙글 잠이 한 바퀴 돌면
전화기가 토하기 시작한다 내장까지
축축히 젖은 푸른 낙엽들
갓 태어난 진흙의 깊은 한숨소리
맹인이 가마에 장작을 때면
여물지 못한 태아는 팽창한다
서커스 천막 찌그러진 그림자
부지런히 음각하는 두 손의 비명
오전의 혓바닥이 딩동 울리면
망각이 웃으면서 가방을 싼다
시작을 향해 굴러가는 끝
잎조차 피우지 않은 꽃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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