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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글의 자리(Side B)

피로가 묻어있는

생활관. 즉 집단 거주 시설. 복도는 쭉쭉 뻗어나가고 가지를 쳐 나가듯 방들이 복도에 매달려있다. 폐포가 폐 혈관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모양 같다. 부지런히 숨을 쉬는 가련한 생명들이, 대체로 누워서 혹은 어쩌다가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이곳의 생활은 어떤 생활일까. 철저하다기보다는 처절한 생활, 매 순간 생과 활의 의미를 잃어가면서도 생과 활의 현재를 뼈에 사무치게 느끼는 생활이다. 그래, 하지만 이것은 종을 위한 헌신이다.


꿀벌들에게 집이 갖는 의미가 아마 비슷할 것이다.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꿀벌들이 집에 대해 낭만적인 인상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유전자가 시키는 대로 수백 km를 떨어진 곳에서도 벌집으로 돌아올 수 있고, 벌집이 공격받으면 개개인의 목숨을 버려 전체를 구하는 일에 힘쓴다지만 그들의 생활이란 역시 처절하게 보인다. 인간의 입장에서 함부로 벌의 삶을 평가하는 게 스스로 역겹게 느껴지지만 말이다.


집의 소파는 안락한 잠의 터가 되어주기도 하고, 지친 여행객을 재워주는 침대이기도 하나, (사실 우리집에서 소파가 가족의 친목을 이끌어 준 지는 너무도 오래되었기에 그런 기능을 상실했다) 공공장소의 소파란 생각보다 자주 사용되지 않는 법이다. 오며가며 보는 눈들이 많기 때문에 최대한 편한 자세를 잡기도 민망하고, 어차피 잠깐 들렀다 가기 위한 용도이기에 그리 오래 앉아있을 이유가 없다. 주인 없는 소파는 그렇게나 외로운 것이다.


생활관 로비에 놓인 소파는 이중의 속박에 갇혀 있는 셈이다. '생활관'이라는 생활 없는 생활 속에 뿌리박은 데다가, 로비라는 공간 아닌 공간에 닻을 내리고 있다. 허망함 속에서 스스로를 구제할 힘도 없는지 소파는 멋진 가죽천을 축 늘어뜨리고 있다. 가끔 가다 누군가가 온몸의 힘을 풀고 소파에 자신을 의탁할 때 정도에야 팽팽하게 눈을 빛내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아무도 복도에 없는 밤이 되면 소파는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비상구 유도등과 함께 우주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가냘픈 불빛들이 복도를 채운다. 이렇게도 세상에 많은 빛이 있었는지, 나는 불침번을 서며 처음 알았다. 그리고 소파란 것이 얄미울 정도로 고맙다는 것도.


사실은 안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간혹 소파에 내 피로를 잔뜩 묻히고 만다. 철없는 아이처럼 몸을 부비적대다보면 밤중의 고독한 시간이 조금은 빨리 지나가는 듯하다. 어쩌면 지금 이때 이곳에서만 누려볼 수 있는 악취미에 가까운 즐거움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공공장소의 소파를 사적으로 점유하고, 마음껏 향유할 수 있다니.


그렇지만 역시, 내가 가져온 피로를 묻혀놓는 일은 조금 미안하다. 이 소파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피로를 받아들여야 했을까. 남에게 피로를 마구 풀어놓는 인사만큼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형편없는 모습으로 소파에게 욕구를 해소한 게 아니었을지. 그래도 이 소파 또한 종을 위한 헌신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동지고, 동지라면 조금은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내가 소파에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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