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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글의 자리(Side B)

금식 기간

동물들은 다치면 금식을 한다고 한다.



그럴 듯 한가? '한다고 한다.' 당초 동물들의 금식에 관해 관심이 생겨 검색을 해보니,(얼마나 편리하고도 신뢰성 떨어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동물들의 금식은 마치 관용구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금식을 찬양하는 이들이 왜인지 글머리에 꼭 꺼내는 이야기가 바로 동물들의 금식 이야기였다. 실제로 그들이 강조하려는 것은 금식을 통한 다이어트거나 건강 고양이거나 영적 충만을 추구함이었다. 동물들은 여기에서마저 이용당하는 신세였다.

그나마 가장 관련이 있는 내용은 수술 받기 전에 동물들에게 금식을 시켜야한다는 것. 인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통용되는 상식이니 그냥 넘어갔다.

외국 웹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google에 animal fasting이라고 쳤더니 animal testing이라고 바꿔줬다. 친절하다. 그래서 미국인들이 할 법한 방식으로 do sick animals fast? 같은 문장을 쳤더니 do animals fast when sick 이라고 미국인이 정말로 할 법한 방식의 문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역시 마찬가지. 금식을 권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논지를 강화하기 위해 던지는 전가의 보도였다.


동물들의 금식에 대한 실상을 알 수 없게 되어버렸기에 크게 실망하고 인간들의 금식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동물들이야 우리처럼 약사 면허를 줘서 약을 파는 경우도 없고 의사랄 것도 없으니 금식을 하지만, 인간은 대체 왜 금식을 할까?

나도 1일1식을 실천해본 적이 있었다. 왜인지 아무 것도 먹지 않음으로써 속의 것들을 확실히 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장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음식물의  찌꺼기를 상상해보았다. 화장실에서 많이 보았을 그런 모습의 사물이 내 장 속에 자리잡고 있으리라. 아마 이런 상상에 능숙한 사람들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 단식을 하나보다.

허나 나는 1일1식인데, 1일만에 포기했다. 너무 배가 고팠고, 배가 고팠다. 대체 왜?


한국에서 금식과 가장 잘 붙는 단어들. '방법' '다이어트' '물' '효과' '기도' '보식'... 결국 금식의 목적은 다이어트 아니면 기도라는 것이다.(그 외의 다양한 목적에 대해서는 '효과'를 참조하면 될 것이다)

금식이 경건한 행위인 까닭을 생각해보면, 예수의 40일간의 금식 고행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허나 그분께서 금식 고행을 하기 이전에도 이미 금식은 경건한 일이었으리라.

금식은 자신을 가장 낮추는 일이다. 이 모든 양식이 오로지 하늘에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내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하늘의 양식만으로 살아 버텨 보겠다는 굴종이다.

영육간의 건강이라는 말을 쓴다. 영혼과 육신이 모두 건강하다는 것, 아니 그럼 금식이 이에 가장 합당한 행위가 아닌지.

한편 금식을 하다보면 도달할 것만 같은 기묘한 트랜스 상태(해본적이 없지만 왠지 그럴 것 같지 않나???)가 신에게 좀 더 가까워지는 몸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몸이 점점 가벼워지면서, 고통은 줄어들고 머릿속이 환하게 빛나는 때가 오지 않을까?

엄청나게 苦痛스럽겠지만 그냥 굶어죽는 사람들도 있는 세상에 금식은 오히려 사치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강제로 기아 상태에 처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선택하에 곡기를 끊는 것은 훗날 남들에게 나누어줄 식량을 예비한다는 의미를 가져야 마땅할 것이다.


금식을, 한번 마음먹고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에 든 기름기를 확 빼버리고, 순전히 내 본래 가져온 육신만을 가지고 나와 대적해보고 싶다. 정말 음식을 끊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비울 것이냐에 있다.

관성적인 삶 속에서 쇠락의 길을 걸어온 척추와 관절들에게 새로운 각성의 계기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 후에 찾아올 즐거운 break-fast의 시간을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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