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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글의 자리(Side B)

온도적정

북쪽 하늘을 면한 작은 방, 옥탑은 아니되 가장 모서리의 방, 그러니까 가장 날카로운 방. 하늘을 찢고 들어가는 방에서 5년이 지났다. 그 중 3년은 방에서 살지 않았으니 아직 낯설다. 여전히 방에서는 잠만 잔다.


날이 가도 밤은 항상 추웠고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독일어에서 말하는 'Es zieht'(직역하면 It pulls)가 바로 이렇게 외풍이 들어오는 상황이다. 누가 무엇을 당기고 있길래 바람은 쉴새 없이 스며드는가. 와류는 구석에 몰린 채 언제든 벗어날 기회만을 노렸다. 겨울바다를 꿈꾸는 것들이 허공에서 헤엄치다가 따뜻한 곳에 끌려 옹기종기 모였다.


공중을 헤엄치는 상상, 아주 오래된 류의 상상이지만 해본지도 오래된 상상이다. 공기는 충분한 부력을 제공하지 못하고 중력의 눈은 매섭다. 어찌하여 예외도 없는지, 냉엄한 찰기로 발목을 바닥에 붙여놓는다. 어릴 적에는 날고 싶어서, 학교 운동장 스탠드에서 뛰었다. 일단에서 뛰고 이단에서 뛰고 삼단에서 뛰다보면 언젠가는 더 높은 곳에서 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나는 것이 아닌지. 아쉽게도 군대에서 고공 강하를 경험하지 못해보았고 스카이다이빙도 미경험의 영역에 남아있지만 떨어지기만 해서는 날 수가 없다.


그다지 외롭지도 않고, 그렇게 뜨겁지만도 않게 지낸 겨울이었다. 새로 산 전기담요는 한국에서 만든 전기장판과는 달리 아주 은은한 따뜻함만을 전달해주었다. 이불로 덮어놓지 않으면 날아가버리는 온기였다. 바람이 새기 때문일 것이다. 제 스스로 뜨거운 것이라 해도 지켜야 뜨겁게 살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아침저녁으로 투여해야 할 고독의 적당량을 알았으되 아직 한낮에는 자신이 없다. 한낮의 대기는 쉽게 달아올랐다가 바람에 잘 쓸려가버리는 가벼운 성질이 있다. 예민하게 눈금을 읽어내지 않으면 적절한 순간, 올바른 양을 계산하기가 어렵다. 바늘조차 휘어진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리저리 찌를 수록 주사바늘 자국이 남아 긴팔 옷을 입어야 한다. 그러니까, 추운 데서 따뜻해지는 건 쉽지만 따뜻한 데서 적당한 따뜻함을 유지하기란 매우 어렵다.


손쉬워 보이던 균형조차 이토록 어렵다는 걸 알았으니, 무심하게 변수를 줄여나간다. 측정하기 어려운 것들부터 지워나가면, 오히려 설명력이 내려가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다중회귀분석을 참고) 하지만 애당초 높은 설명력이 허상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말하자.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하자. 할 수 있는 것만큼은 꼭 하자. 최대주의가 아닌 최소주의로서 균형을 맞추자.


예열이 끝났다. 반응 종료.



※참고자료:

온도 적정

 , thermometric titration , thermal titration ]
【원리】
화학 반응은 열의 출입을 수반하므로 반응계에 생기는 열변화를 측정함으로써 반응의 완결점을 알 수 있다. 이 원리를 이용하는 적정이 열적정이다. 실제로는 적정에 수반한 용액의 온도 변화를 측정하므로 온도 적정이라 한다. 반응열에 기초하는 온도 변화가 그치는 점을 갖고 측정 종말점으로 한다. 보통의 적정(지시약을 사용하는 적정, 전위차 적정 등)은 모두 평형 상수에 의존한다. 즉 자유 에너지의 변화에만 의존하는 방법인데, 온도 적정은 엔탈피의 변화에 의존하는 방법이므로 엔탈피 적정이라고도 한다(⇀ 열함량).

[네이버 지식백과] 온도 적정 [溫度滴定, thermometric titration, thermal titration] (화학대사전, 2001. 5. 20., 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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