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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글의 자리(Side B)

헌 글의 자리? 새 글의 자리라고 되어있는 폐허를 발견했다. 매음굴에 간 거친 남자처럼 나는 다급해졌다. 대체 어디로 들어가야 글을 쓸 수 있는지조차 모르겠는 이 블로그에 빨리 글을 남기고 싶어졌다. 내가 티스토리 블로그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방법을 이용해 글쓰기 창에 들어오고 나니 되레 마음은 차분하니 뭔가 술술 써낼 수 있을 듯하다. 사실 지금은 인터넷 강의를 듣던 중. 글쓰기의 매혹에 미쳐서 인강 창을 닫아버리고 이 미친 백지를 바라보고 있다. 하얀 색 창을 산산히 깨버리고, 찢어발겨서 하늘에 휘휘 날리고, 불그죽죽한 물감으로 더럽히고 싶다. 더러운 폭력의 욕구가 목구멍 너머에 치밀고 있다. 이 사악한 강제력을 화면에 행사한다. 은 폐허가 되었다. 그러나 '사용을 중지한 외교 공관이 더 이상 외교 공관이 아.. 더보기
영에 대하여 버스를 타고 독일 땅을 달리던 시절의 이야기다. 함부르크에서 뮌헨은 아마도 독일 국내에서는 가장 긴 버스 노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직선으로 달려주면 좋겠지만 버스도 수익을 내야하기에 중간에 셀 수도 없이 많은 도시에 정차한다. 덕분에 버스 정류장만큼은 질리도록 보았다. 독일은 철도가 발달한 나라다보니 버스 터미널이 잘 갖추어지지 않았다. 그냥 허허벌판에 표지판이나 몇 개 세워둔 곳들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뮌헨 같으면 대도시다보니 조금은 터미널 느낌이 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렇지만 역시 어딜 가나 독일 도시를 연결하는 점들이 되는 건 기차 중앙역들이다. 함부르크에서 뮌헨으로 돌아오던 날 나는 대낮에 버스를 탔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침 9시 정도에 타서 밤 9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독일의.. 더보기
잘 모르겠다. 연희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나 더듬거리며 기생을 부른다 이름을 시대가 기억할테니 한 곡 청해 봄이 어떠한가 어찌 그것이 죄가 되오리까 다만 한바탕 놀고나면 목이 우수수 떨어지오 풀로 붙여줄 터이니 걱정마오 위증즐가 태평성대 선을 한번 넘으니 옷을 벗는구나 선을 두번 넘으니 높이 오르는구나 머리채를 흔들며 깡총깡총 연기가 자욱하니 상서롭소이다 머리가 베인 자리가 수릿날 아침 이슬처럼 시원한데 사이다 한 잔 안 주시리이까 입가에 빨간 치킨 양념을 묻히고 기어보너라 자고로 한신은 가랑이놈이라 하였소 눈뜨고 볼 수 없는 것을 보여드리리다 내 오늘이 마지막 잔칫날이니 죽은 비렁뱅이들 불러모아 놀아보겠소 흰 피를 뿌리고 죽은 내 딸아 불타죽은 내 아들아 저기 저 상자를 보너라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파란.. 더보기
새롭고 영원한 계약 한때는 기억을 고등정신작용의 일환이라고 믿었고, 어느 시절인가에는 손으로 쓰여지는 것들만이 올바른 기억이라고 주장했고, 또 보이지 않는 사회적 힘들이 그리는 지형도가 기억이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과거의 나와 결별하려고 할 수록 그 반동으로 인해 자꾸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 같다. 요새는 점점 힘이 부친다. 그래도 힘을 내어 다시 한 번 부정해보자면 기억은 피로 쓰이는 것이다. 유혈 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나도 편리하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그런 이야기는 대체로 담대한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법이다.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기억에 대한 소박한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망각의 장소를 찾아가고 싶은 사람의 도피적인 언설에 불과하다. 기억이 어디에 축적되는지에 대해서는 .. 더보기
에라이 XX XX X하니 XX이 XX? 의미부를 전부 검열처리해버렸다. 검열 당하니 기분이 어때? 식민지 조선의 소설을 읽다 보면 뜬금없이 XX가 튀어나온다. 다행히도 식민 통치를 벗어난 한국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XX에 들어갈 만한 내용을 추측하는 게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원래의 텍스트가 어떠했는가를 상상하고 끼워맞추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XX로 떡칠된 바로 그 텍스트를 존중하는 일이다. 사상 통치 기제가 일상적 텍스트의 영역까지 침범하던 시절이 낳은 텍스트. 분명히 XX가 아니더라도 작가들은 이미 한 차례 자기검열을 거쳐서 글을 써내려갔을 것이다. 게다가 김동인의 회고에 따르면 검열관과 작가 사이에도 모종의 관계가 존재했다. 검열을 하나의 원텍스트를 둘러싼 상호작용이라고 본다면, 이것이 반복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