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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글의 자리(Side B)

에라이 XX

XX X하니 XX이 XX? 의미부를 전부 검열처리해버렸다. 검열 당하니 기분이 어때?


식민지 조선의 소설을 읽다 보면 뜬금없이 XX가 튀어나온다. 다행히도 식민 통치를 벗어난 한국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XX에 들어갈 만한 내용을 추측하는 게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원래의 텍스트가 어떠했는가를 상상하고 끼워맞추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XX로 떡칠된 바로 그 텍스트를 존중하는 일이다. 사상 통치 기제가 일상적 텍스트의 영역까지 침범하던 시절이 낳은 텍스트. 분명히 XX가 아니더라도 작가들은 이미 한 차례 자기검열을 거쳐서 글을 써내려갔을 것이다. 게다가 김동인의 회고에 따르면 검열관과 작가 사이에도 모종의 관계가 존재했다. 검열을 하나의 원텍스트를 둘러싼 상호작용이라고 본다면, 이것이 반복될 때 서로가 가진 룰은 점점 구체화되고 쌍방의 행위자는 나름의 방식대로 룰을 준수하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물론 이런 탈역사적인 분석 방식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다만 일제에 의한 통제가 순전히 일방적인 방향으로만 이루어졌다는 식의 사고를 지양해야 할 것이다.


<식민지 검열: 제도 텍스트 실천>에 따르면 식민지 검열기구는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좀 단순화시키자면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이행하면서 고등경찰과가 맡던 것이 도서과로 넘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현대인들에게 도서과라는 이름은 소박해보일지 모르겠지만, 글로 된 텍스트가 사실상 전부이던 시절이었으므로 당시의 언론과 문학을 통제한다는 것은 언어의 흐름이 걸러진다는 의미였다. 일본인 간부와 일본인 및 조선인 실무자급 직원들 그리고 고원이라고 불리던 일용직 직원들로 구성되었던 도서과에서 내 흥미를 끄는 부분은 조선인 직원들이다. 20년대에는 주로 경찰에서 일하던 조선인들이 도서과에 배치되었으나 30년대부터는 경성제대나 경성법전 출신의 엘리트를 채용하였다. 이효석도 1931년 도서과에 취직했다가 동료 문인들의 비난을 받고 퇴직했다고 한다. 식민지 시대의 조선인 친일부역자들이 보던 세계는 어떤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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