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 글의 자리(Side B)

말과 행동

말의 뜨거운 함정.


성탄절이다. 부대의 밤에는 성탄이 없다. 금요일 퇴근하면서 나는 그저 좋은 주말 되시라는 말을 했다. 성탄절은 대체로 잊혀진 분위기다.


물론 종교 시설은 다르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미사에 참여하여 인간의 미천함에 대해 생각했다. 신부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어느 수녀님이 잠자리에 들려 하는데 새가 창문에 와 부딪혀 떨어졌다. 가서 도와주려는 마음에 손을 가까이 하니 도망치더란 것이다. 이 손길이 새에게는 더욱 무서운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내가 새였으면 도와줄 수 있었을텐데, 아쉬워하면서 그냥 돌아왔다.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리하여 헐벗은 아기의 모습으로 구유 위에 누워야 했다.(구유를 잘 모르는 우리는 낭만화하겠지만 실제로 아주 더럽고 냄새나지 않았을까? 물론 아주 아주 춥고) 죽음으로써 모든 죄를 짊어지기 위해 태어난 완전한 신이자 완전한 인간, 천상의 왕이 보인 가장 나약한 모습에 우리는 경배하는 것이다.


높아지고자 하는 이는 스스로 비천함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꼴찌가 첫째되고 첫째가 꼴찌되는" 비결일 것이다.


그런데 이 말과 행동 사이에는 무한한 간극이 있어서, 그걸 심연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지옥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좋은 생각과 좋은 행동 사이에 지옥이 있다. 그걸 건너가지 못하면 지옥으로 간다. 지옥에서 악마들과 신나는 파티를 즐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지옥은 단순한 고통의 공간이 아닐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후세계는, 내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보통 사후세계를 이야기할 때 아 그럼 못 죽고 계속 살아야 하잖아? 너무 스트레스일거야 라고 하지만 사후세계에서 현재 우리가 가진 형체가 있기나 할까? 나는 사후세계란 어떤 느낌으로만 존재하는 세계라고 믿는다. 지금 우리가 가진 오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개념적인 것이다. 천국이 정말 손에 손잡고 뛰노는 곳이라기보다 그런 천상의 느낌을 받는 혼들의 세계 정도에 가깝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지옥이 지속적으로 묘사되었듯이 불 속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대신 아주 큰 우울함과 아주 큰 아픔이라는 상태에 가까울 것이다. 물론 지금 선택한 감정의 어휘들조차 사후세계에 적용하기엔 어폐가 있다. 다만 지금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계시록이 그러하듯.


단순히 두려움만으로 믿어서도 안 될 것이고, 기대만으로 믿어서도 안 될 것이다. 

'새 글의 자리(Side B)'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온도적정  (0) 2017.02.19
배설을 너무 오래  (0) 2017.01.07
이런 날에는 들까부르고 싶다  (0) 2016.10.03
생각하지 않고도 쓸 수 있다면  (0) 2016.10.01
[10분간 글쓰기] 욕망의 유예  (0) 2016.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