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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글의 자리(Side B)

이런 날에는 들까부르고 싶다

비가 밤 종일을 새워서 내리다가 그친 날에는 버스를 타고 싶다.


버스를 타고 죽어라 멀미를 하며 버스로 갈 수 있는 길의 끝까지 가보고 싶다. 내리고 싶어도 내리지 못하고 포장되지 않아 나를 위 아래로 흔들어대는 길의 감촉을 전정기관으로 느껴보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하고 싶은 것들 투성이,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싶은 것들.


하늘 한 구석에 스크린을 세워 두듯이 파란 하늘이 잔존하다가, 마침내 온 누리를 뒤덮은 시간이면 아직 따사로운 햇볕을 올해의 마지막처럼 즐긴다.


여름 내내 사용되어 다 낡아 떨어진 볕이 그래도 따끔하다. 아직은 살아있거니, 한다. 왼쪽 뺨이 뜨거운 것은, 커피를 마셔서라고 핑계대어 본다.


산은 구성진 노랫가락처럼 흘러가다가, 모이기도 하고, 다시 흩어져서 제 갈길 가는 나뭇꾼. 자기 자신을 베어다 장에 파는 나무처럼 눈물겨운 효성이 있을까.


다 익어갈 곡식들과 함께 바람결에 이리저리 들까불리다가, 마침내 계절의 끝에서 뚝 떨어지고 싶다.


이삭이 수만 년의 인류 역사 내내 그래왔듯이 새로운 삶의 조각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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