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블루스와 미역국
- 연애를 마치고, 시작하며
방에 한 사람 몫의 물건이 더 있는 걸 빼면 삶이 대체로 단출하다.
잘 하면 올 시월에는 한국어라곤 한 마디도 모르는 남자가 미국 미역으로 쇠고기 없이 끓인 미역국을 먹게 될 것 같다. 기분이 묘하다.
우리 집 식구들은 원래 요리 잘 안 한다고, 엄마 생일과 내 생일이 시월에 일 주일 간격이라 미역국을 끓여서 한 달을 먹는다고, 그런 설명을 주절주절 늘어놓으니 P는 핸드폰을 꺼내 '한국 해초 수프'를 검색한다. 이걸 아예 버스데이 수프라고 부르나보네, 하면서 레시피를 쭉 훑어보더니 아마 끓일 수 있을 것 같단다.
내 미역국은 그렇게 버스데이 수프가 됐다.
미역국에 찰밥을 말아 불려 먹고 싶어진다.
딴에는 '집밥'을 먹고 있기는 하다. 언제부터인가 내게 연애는 음식과 불가분한 것이 되었다. 집주인이 오븐을 수리해 주자마자 P는 야채와 향신료 몇 가지로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인도식 커리를 만들어 냈다. 나는 오리엔탈 드레싱의 샐러드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고, 고슬고슬한 현미와 함께 커리도 한 접시를 용케 다 먹었다.
터키 식당에서 그루지야산 와인을 마시며 요거트를 곁들인 가지와 피망 요리를 먹는 것도 좋고, 옆 학교 바비큐에 따라나서 종이 접시 그득 고기와 그릴 자국이 선명한 채소를 덜어 먹는 것도 좋다.
어쩌면 내가 원했던 많은 것들이 비로소 일상에 생겨났다. 장바구니를 들고 올 걱정에 카트에서 식료품을 도로 덜어내지 않아도 되는 것, 몸살이 났을 때 혼자 식은땀을 흘리며 죽을 끓여 먹지 않아도 되는 것. 가구를 주문하고는 조립할 걱정에 몸서리부터 칠 필요가 없는 것. 비구니 같은 노동에서 어느 정도는 해방된 것.
고행보다 삶을 택한 것이 괜히 치욕스럽기는 하다.
한식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아마 한식은 아무 때라도 먹을 수 있다고 늘 믿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본명에 대한 애착 없이 재키를 고집한 것도 아마 비슷한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다만 살다 보면 가끔 집에서 끓인 -- 결코 맛있다고 할 수는 없을 -- 미역국과, 복모음과 장모음 없이 깔끔하게 발음된 내 이름 두 자가 그리울 때가 있다.
인생은 이제나저제나 반쪽짜리가 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나는 반쪽이라고 여겼던 것이 실은 온 개짜리의 인생이고, 그 반/ 온 개의 무엇인가를 향해 노력하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아주 옛날부터 이 사실을 주기적으로 다시 깨달아야 했다. 삶은 기본적으로 완벽할 수 없고, 내가 가지고 싶은 것, 선망하는 것 중 여러 가지는 필연 내 차지가 될 수 없다는 것. 그래도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그 당연한 사실을 그렇게 자주 잊어버리고, 기억해 내기를 반복하는지도 모른다.
최선 아니라 차선, 차차선의 미역국처럼 겸허해져야 한다는 것.
한번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후회함이 없어야 하는 것. 적어도 회한이 향수로 탈바꿈할 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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