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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공지 및 잡설/공지

초경의 징후 ~[월경]의 시작을 알리며~

생명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내고자 시작하였던 [배설]은 배설물로 가득찬 버려진 공중화장실의 변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길을 잃은 사람들이나 어쩔 수 없이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고 마는 적적한 공간 말입니다. 그마저도 남자화장실 문은 잠겨 있는 바람에 여자화장실을 쓸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왔으니 화장실에서도 삶이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배설]은 끝났지만 더 큰 목적을 향한 도정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소화, 순환, 호흡, 배설이 일어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생식 활동을 위해서입니다. 변색된 채로 반짝거리는 오래된 세피아톤의 사진처럼 비루한 생을 이어가는 것은 그저 다른 삶을 이 땅에 내려보내기 위함입니다.


이제 만물이 약동하니 초경이 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생리, 라는 아주 직설적인 이름을 생각했으나 보다 세련되게 [월경]을 고른 것은 필진 '작희'의 선택이었습니다. 뜻이 너무나도 중층적으로 겹쳐 있어서 저희가 이 이름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국경을 넘어가는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뒷모습? 보름달이 뜨는 밤에야 볼 수 있는 고래의 등? 달마다 기어서 찾아오는 달거리? 어느 쪽이든 과분하지만 배설 이후에 희망이 있다면 월경이 아닐까요. 혹자는 월경을 생식적 배설 혹은 배설적 생식이라고 하였으나, 월경을 배설로 이해하기에는 피가 너무 진합니다.


urstruation이라는 영문주소명은 baesul에 비하면 세 배 정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당연하게도 menstruation에서 온 단어입니다. 좀 더 예쁜 제안(menstrel)도 있었지만 지나치게 어려운 것 같아서 내려둘 수밖에 없었습니다.(지금 보니 지금 고른 이름이나 피차일반이군요) 단순히 menstruation에 그치지 않고 당신과 관련된 무언가가 되고 싶은 마음에 ur(your)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성별이나 종족이 무엇이든 간에, 바로 지금 당신과 관련된 그것이 되고자 합니다. 한편으로 독일어에서 Ur-는 원(原)의 의미를 갖는 접두사입니다. 월경이 가진 시원성(始原性)을 품고 싶은 마음이기도 합니다. 저는 초경하면 아주 먼 원시시대의 소녀가 흘렸던 첫 달거리를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마음입니다.


[월경]은 이름값을 하기 위해 매달 필자당 한 편씩의 글만을 올릴 계획입니다. 내부적으로는 좀 더 과학적인 방법론이 있지만, 여러분은 그저 현상적인 것만을 경험하시면 되겠습니다.


아직 초경은 오지 않은 무엇이고 이 글은 그 징후입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곧 올 미래를 기대해주십시오.



17.05.2014.

뮌헨에서

심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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