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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배설>/JHALOFF

이상함의 인식론 - 산문

이상함의 인식론


    무언가가 이상해졌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문제가 있다면 무엇이 이상해졌는지 내가 모른다는 사실이다.

    눈을 꼭 감고, 머리를 긁적이지만,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고, 해가 뜨지 않은 회색빛 런던 하늘을 쳐다보는 순간에도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나는 무엇인가가 이상해졌다는 것을 안다.’ 문제는 무엇이 이상해졌는지 내가 결코 알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이불을 정리하고, 샤워를 마치고, 아침을 위해 고기를 굽는 순간에도,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지만, 여전히 무엇인가가 이상해졌다는 생각만이 나의 뇌리 속에 자리 잡는다. 문제는 내가 무엇이 이상해졌다는 믿음만을 가지고 있고, 구체적으로 무엇이 이상해졌는지 모른다는 데에 있다. 혹시나 하고, 주위를 살펴본다. 이상한 점이 있는지 살펴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의 일상은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내가 하룻밤을 잤다고 생각하는 사이 수천 년의 시간이 흘러버린 것도 아니고, 내가 어느 날 아침 흉측한 벌레 한 마리로 변하거나, 짓지도 않은 죄에 대하여 기소를 당한 것도 아니며 처음 보는 낯선 이가 내 방에 있거나, 내가 내 방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든지, 혹은 내가 일어난 순간, 나는 누구이며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는 상황에 처한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일상이다.

    어쩌면 나는 변화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무엇인가가 이상해졌다, 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은 틀리다. 구태여 내가 이 평범하고 반복적인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꾼다고 하여 알 수도 없는 막연한 망상만을 가질 리는 없다. 변화를 원하기에 변화하였다는 생각만을 가진 채, 무엇이 변화하였는지 모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나는 왜 무엇이 이상해졌는지 직감적으로 느끼는 것일까?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나는 하품을 하며 의자에 앉고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무엇인가가 이상해졌다. , 변화가 일어났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모든 것은 변화한다. 모든 변화가 이상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상해졌다고 내가 무엇인가를 느끼려면, 그 변화는 내가 예상치 못한 변화여야 함이 분명하다. 우리는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을 이상하다고 표현하지 않으니까.

이상해졌다(S)=

1. 나의 예상과는 다른 변화가 생겼다. (C)

2. 나는 그 변화를 경험하였다. (E)

3. 나는 무엇인가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한다. (B)

S=CEB

 

    만약 무엇인가가 이상해졌다면, 대체적으로 이런 과정을 거칠 것이다. 나의 문제는 내게 오직 3의 결과만이 있고, 12가 생략되었다는 점이다. 아니, 말을 정정하자. 적어도 내가 12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문제가 생긴다. 나는 나의 믿음에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과연 무엇인가가 이상해졌음을 아는 것일까? 나에게 주어진 것은 그저 무엇인가가 이상해졌다는 확신뿐이다. 그리고 그 확신의 밑바탕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렇다면 사실 나는 무엇인가가 이상해졌다고 생각만 할 뿐, 아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무엇인가가 이상해졌다란 나의 생각은 그저 생각으로 치부하고 무시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이에 누군가는 반박할 것이다. ‘에게는 무엇인가가 이상해졌다라는 확신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지식이 아니란 보장은 없다. 우리의 기억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무엇인가를 안다. 나도 많은 것을 안다. 나는 영국에 빅토리아 여왕이 있었음을 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빅토리아 여왕이 있음을 아는 것일까? 물론 난 대답할 수 없다. 어쩌면 어릴 적에 읽은 책에서 본 것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어릴 적 누군가가 알려준 것일 수도 있다. 적어도 난 영국에 빅토리아 여왕이 있었다,’란 지식의 출처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내가 영국에 빅토리아 여왕이 있었다,’를 안다고 표현할 수 없는 걸까? 답은 아니다. 사람은 대부분 자신이 가진 지식의 출처를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할 것이다. 꼭 그들이 지식의 출처를 알아야 아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 또한 무엇인가가 이상해졌다란 믿음이 비록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몰라도,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대체 무엇이 이상해졌는가?

 

    아니, 아니, 전부 틀렸다. 이 모든 가정은 무엇인가가 이상해졌다가 사실일 때 성립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작 중요한 문제는 여전히 무엇이 이상해졌는가, 이다. 과연 이상해진 것은 있는가?

    ‘무엇이 이상해질까? 아마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일기예보와 달리, 날씨가 이상해졌을 수도 있다. 내 몸이 이상해져 젤리 형태의 비명도 지를 수 없는 물체로 변하여 이상해졌을 수도 있다. 어쩌면 런던의 거리를 걷는데, 지뢰를 밟는 일도 이상한 일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생각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저 이상해진 것을 발견하면, 끝나는 문제니까.

    이상해진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보자. 어쩌면 그것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상해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그것이 어떤 변화를 의미한다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그렇다면 변화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사건이 일어나야할 것이다. 다시 엄밀히 정의해보자.

 

변화(C)=‘t0’(시간)‘s0’(공간)에 위치한 어떤 것(th.0)’‘t1’‘s1’에 위치한 어떤 것(th.1)’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변화들이 모여서 더 큰 변화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며, 작은 변화만으로도, 큰 변화가 일어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만히 있는 것들은 변화하지 않는 것인가? 나는 이에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르고, 공간이 달라진다고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상해 보이는 소리지만, 어쩔 수 없다. 일반인들과 다른 상식 속에 사는 것은 우리 미치광이 철학자들의 흔한 문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인간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변화에 관한 그의 설명이다. 콰인은 이런 헤라클레이토스를 인용하여, 변화에 대해 설명하는 짤막한 논문을 썼었고, 나는 1학년 존재론 시간에 그것을 읽었다. 1학년 콰인의 논문을 읽을 때의 나와 지금의 생각하는 나는 어떠한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의 ‘W.V.O.’ 콰인이라는 이름을 매우 좋아한다.)

    어느 정도 확실해졌다. 적어도 모든 것은 언제나 변화한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제기랄, 마치 책을 한 권 읽으면, 중고 책 2권을 더 사오듯, 문제를 해결할수록 문제가 더 생긴다. 아니, 나는 침착해야한다. 나는 지금 무엇인가가 이상해졌는지를 찾아내야한다. 그것이 내 일상을 방해하니까.

    이에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너는 적어도 무엇이 변화하는 것에 관한 정의를 내렸다. 나는 대답한다, 아니, 넌 아무 것도 몰라, 내게 중요한 것은 이상한변화라고. 그렇다! 모든 것은 언제나 변화한다. 그렇다면 대체 이상한변화는 무엇인가!

    누군가는 다시 말할 것이다. 너는 이상해졌다를 정의할 때, 네가 생각하기에 이상한 변화라고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전부 해결된 것이 아닌가? 나는 다시 이 상상의 친구에게 윽박을 지른다. (있지 않으니까 가능한 일이다.) 멍청아, 생각해봐, 생각을 하라고! 문제는 이상하다라고! 무엇이 변화하든, 어떻게 변화하든은 중요한 게 아니야, 그게 어떻게 변화해야 나에게 이상한 것인데?

    그렇다, 이상한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어느 미치광이 회의주의자가 외친다고 생각해보자. 모든 것은 그저 변화할 뿐이다. 거기에서 규칙을 찾아내고, 법칙을 찾아내는 것은 생각하는 너이며, 사실 너는 그것이 필연적으로그래야한다는 확신을 찾을 수 없다. 물이 존재하지 않거나, 지구가 존재하지 않거나, 우주가 다른 형태로 만들어져 지속되어온 가능성 세계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데카르트의 악마가 지배하여, 1+1=3인 세계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러한 가능성이 있다면,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 전혀! , 무엇인가가 이상해졌다는 것은 순전히 너의 망상에 불과하며 그렇기에 이상해지는 것은 없다. 그저 변화할 뿐이다.

    아니야, 아니야, 난 너무 깊게 생각했다. 회의주의자는 집어치우자. 생각하자,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회의주의자가 아니다. 그런 문제는 교수들이나 다루라고 하자. 중요한 것은 나에게 있어 무엇이 이상한가? 어쩌면 난 너무 멀리 와버린 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부주의함을 탓한다. 나는 이미 S=CEB라고 정의를 하면서, 나의 예상과 다른 변화를 이상해졌다라고 정의하지 않았는가? 브라보, 할렐루야!

    기뻐하기는 일러, 친구, 나의 상상의 존재가 다시 말을 걸어온다. 그렇다면 너의 예상이 뭐지?

    나는 다시 말문이 막힌다.

    나의 예상이 무엇일까? 그렇다면 다시 이상해졌다로 돌아가 보자. 천동설을 믿는 중세의 사람을 데려와서, 우주로 날려 보낸 후,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지구의 모습을 직접 보여준다면, 그는 이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 온 사람은 서로를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나는 이제까지 쌓아온 나의 지식과 믿음과 이성에 기반 하여 상황을 예측한다. 나는 해가 동쪽이 뜰 것임을 나의 이성과 지식에 기반 하여 믿는다. , 나에게 이상한 것은 내가 가진 지식, 믿음, 이성에 반하는 변화를 의미할 것이다.

    좋아, 너는 이제 무엇이 너에게 이상한 것인지 알아내었어. 하지만 문제가 있지, 그렇지? 넌 알고 있어. 그래, 난 알고 있다. 중요한 문제를.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이상해졌는가. 나는 그것을 느낀다. 그러나 그 대상을 모른다. 남은 유일한 방법은 내가 가진 모든 지식과 믿음, 그리고 이성을 일일이 대조하여 나의 예측에 반한 변화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따위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결국 내가 이 무엇인가가 이상해졌다, 란 명제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 것일까? 나는 이 명제를 확신하지만, 정작 무엇이 이상해졌는지 결코 모른다. 이리 부조리한 상황이 있는가? 마치 아무 이유 없이 돌을 굴리는 시지프처럼 나 또한 영문도 모른 채 이상해졌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수인이 되어버렸다. 나는 절망한다. 나는 평범한 학생에 불과한데-!

    그 순간 무엇인가가 뇌리를 스친다. 학생? 그렇다, 나는 학생이다. 그리고 시간은? 시계를 확인해본 순간, 나는 분주히 움직인다.

    그렇다, 이런저런 생각 덕분에 강의에 늦게 생겼다.

    이상해진 하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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