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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배설>/JHALOFF

산문: 영구거세론

영구거세론

- 영구평화를 위한 정언명령-

 

0. 서론

 

이 글을 시작하기 앞서, 우선 필자는 이 글을 현재 쓰고 있는 필자의 정신이 매우 멀쩡함을 알리고 시작을 한다. 이는 몇 가지 오해를 막고, 이 짧은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필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다. 우선적으로 이 글에 <영구거세론>이란 제목을 붙인 시점에서부터, 이 글을 읽는 독자들, 특히 남성 독자들은 거세에 대한 단어에 생리적인 불쾌감과 공포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필자가 이 글에서 주장하는 바는 그들이 느낄 충격과 공포와 아주 비슷할 것이다. 문자 그대로 필자는 영구적인 전 인류의 거세를 주장하는 바이다.

물론 모든 위대한 생각과 진리가 그러하였듯, 무지한 자들에게는 미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며, 그들이 필자를 박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생각은 누군가에 의하여 주장되어야만하며 이에 따른 희생은 불가피할 것이다. 어쩌면 필자는 숭고한 희생정신 아래에 처음으로 이 위대한 생각을 대신 주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독자들이 던질 돌에 맞기 전에, 먼저 필자는 이 글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을 하고자 한다. 그러니 잠시만이라도 첫 돌을 드는 것을 멈추기 바란다.

어디까지나 필자가 주장하는 바는 전 인류의 영구적인 거세다. 물론 단순히 이러한 주장만을 한다면, 필자는 미친놈으로 몰릴 것이다. 누군가가 전쟁은 위험한 것이다, 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아마도 대다수 사람들은 이 주장만 듣고, 동의를 표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근거가 전쟁은 모든 인류를 전부 죽이지 못하므로 위험한 것이다, 와 같은 이상한 주장에 근거한다면, 그의 주장은 이상한 주장이 될 것이다. 필자의 주장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아니, 어쩌면 정반대의 경우일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전 인류의 영구적인 거세를 주장한다. 물리적인 방식이든, 화학적인 방식이든, 성적 관계를 하지 못하는 불구로 만드는 것을 주장한다. 분명 이러한 주장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주장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뒷받침할 근거가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필자의 미친 주장 또한 진리로 뒤바뀔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필자는 단순히 전 인류의 영구적인 거세를 실시해야한다,”와 같이 한 문장으로 끝날 수도 있을 이 주장을 굳이 여러 문단에 맞추어 주장을 하고자 한다.


1. 어째서 거세인가?

 

전 인류의 영구적인 거세를 실시해야한다. 물리적인 방식이든, 화학적이 방식이든, 어떠한 방식으로든, 섹스 행위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생식을 불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 대상이 남성에 한정되든, 아니면, 여성들에게까지 한정되든 크게 상관은 없다. (다만 경제적인 관점이나, 남녀의 신체차이를 고려할 때, 남성들에게 제한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옳을듯하다.)

그렇다면 어째서 거세인가? 이에 대한 필자의 답은 간단하다. 말 그대로 전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서.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신이 약속하는 미약한 천국으로의 길과는 달리, 필자가 약속하는 거세의 길은 이 지상 위의 낙원을 건설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필자는 각각 동정들, 동정이 아닌 자들, 그리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자들의 관점에서 영구거세의 유용함에 대하여 설명하도록 하겠다.

 

2. 동정들에 관하여

 

동정들이란 말 그대로 아직 섹스 행위를 경험하지 못한 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이 동정들을 몇 가지 그룹으로 분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1) 동정이지만, 성적 행위에 관심 자체가 없는 자들. 2) 동정이지만, 성적 행위에 관심이 있고, 동정을 잃을 가능성을 지닌 자들. 3) 동정이며, 성적 행위에 관심이 많지만, 동정을 잃을 가능성이 없는 자들.

1)의 그룹에 해당되는 자들의 경우, 그들은 애초부터 섹스라는 행위에 관심이 없으므로, 불필요한 성기를 절단하는 것에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그들에게 거추장스런 외부기관을 제거해주는 것은 그들의 삶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것이다.

2)의 그룹에 해당되는 자들의 경우, 애매한 경우지만, 그렇다고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동정들은 대개 섹스라는 행위에 대하여 여러 환상을 품고, 자위행위 등을 통하여 섹스 판타지를 꿈꾸고, 섹스 행위를 실현할 날을 꿈꾸며 망상 속에 사는 존재다. 2)의 그룹에 해당되는 자들의 경우 특히나 위험 한다, 이들은 실제로 섹스 행위를 접할 예정인 자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그들의 환상이 결코 현실을 충족시킬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난다. 환상은 환상이며 현실은 현실이다. 이들은 곧 환상과 현실의 괴리감에 괴로워한다. 이러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 그들이 영원히 행복한 꿈속에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하여 거세는 필연적인 선택이다.

3)의 그룹에 해당되는 자들 또한 비슷한데, 그들 또한 환상을 가지지만, 그들의 문제점은 결국 그들이 섹스를 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만약 이들이 거세를 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거세를 당했기에 섹스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라는 필연적인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섹스를 원하지만, 능력 밖의 일이라 할 수 없었다, 란 상태와 거세를 당했기에 섹스를 못 하다, 란 상태의 차이는 극명하다. 마치 백색 거짓말처럼, 이들에게 거세 행위는 선의의 거짓말이 될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3) 그룹에 해당되는 자들의 윤리적인 행복 또한 보존될 것이다.

 

3. 동정을 잃은 자들에 관하여

 

이미 동정을 잃은 자들, 즉 섹스를 경험한 자들 또한 세 그룹으로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1) 섹스에 흥미를 잃은 자들 2) 섹스를 경험하였지만,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자들 3) 섹스를 경험하였고, 앞으로도 경험할 수 있는 자들.

1)의 그룹의 경우, 동정의 1)의 그룹에 해당되는 자들과 같은 이유로 거세가 실시되어야할 것이다. 그들에게 더 이상 성기는 삶에 필연적으로 필요한 기관이 아니며, 따라서 제거 또한 무방하다.

2)의 그룹에 해당되는 자들의 경우, 동정의 3)에 해당되는 자들과 비슷한 연유로 거세를 실시해야할 것이다. 그들에게 섹스 행위를 불가능하게 만듦으로써 나는 능력이 안 되어 섹스를 못 한다라는 명제 대신 나는 거세를 당해서 섹스를 못 한다란 명제를 성립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행복을 존중해주는 방식일 것이다.

3)의 그룹의 경우는 매우 복잡한데, 이들에게는 여러 이유가 동시에 필요하다. 어쩌면 이들 그룹에 대해선 강제성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우선적으로 최대다수의 최대 원리에 입각하여, 대다수가 섹스를 못하는 상황인데 반하여, 이들 소수는 섹스라는 행위를 독차지 한다. 그렇기에 최대 쾌락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이들의 거세는 필연적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이들이 섹스 행위에 몰두하는 대신, 거세를 통하여 생산적인 활동에 몰입하게 하는 것이 이들을 위한 윤리적인 쾌락으로도 더 좋은 방안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이들은 의무적으로 거세를 받아야한다.

 

4. 존재하지 않는 자들에 관하여

 

그렇다면 이제 큰 불만이 나올 것이다. 남성에 한정한다하더라도, 전 인류의 영구적 거세를 실시하게 되면, 아이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인류를 멸종하게 만들 것인가? 이에 대한 필자의 답은 물론, 이다.

영구거세론의 본질적인 목적은 인류를 우리 대에서 끝내고, 모든 폭력의 연쇄를 끊으며, 생물학적 욕구를 초월한 한정된 세대 동안 보다 인류가 더 생산적인 활동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폭력의 연쇄가 중요한데, 이는 물론 생명의 탄생이다.

모든 생식 행위는 본질적으로 폭력으로 시작된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자들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그들은 있지 않기에, 앞으로 있을 것인지에 대한 협상을 할 수 없다. 그들은 있지 않기에, 태어날 것인지, 태어나지 말 것인지에 대한 일말의 선택권조차 없다.

왜냐하면 생명이 있기 시작하는 순간에 이미 그들이 있을 것인지, 말 것인지의 선택권은 주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은 있는 순간부터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있어야 한다.

이에 누군가는 태어난 이후, 자살이라는 선택이 있기에, 생명의 계약 관계는 폭력적이지 않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이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우리는 있지 않았기에 우리의 의사란 것이 있을 수 없었고, 그렇기에 강제적으로 세상에 존재하게 만들어졌다. 이미 만들어졌고, 세상에 존재하기에 우리는 세계에 속하게 되었으며 자연스레 존재를 지우는 행위에 대하여 알 수 없는 불안함을 가지게 된다. 자연스레 자살이라는 선택지는 평등한 자유가 아니라, 극도로 누리기 힘든 자유가 되어버린다.

총을 앞세우고, 웃으며 상대에게 계약을 한다고 하여서 공정한 계약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탄생과 자살 또한 마찬가지다. 자살은 본디 평등한 계약 아래에서의 파기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강제적으로, 폭력적으로 계약되는 이 불공정한 계약 관계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정의롭게 대해야하는가? 당연히 이러한 계약을 미연에 방지해야한다. 따라서 일방적인 생명의 탄생을 막기 위한 영구적 거세는 필연적이다.

 

5. 결론


필자는 논리적이고 올바르고 정의로운 근거를 뒷받침하였으며 따라서 전 인류의 영구적인 거세는 필연적으로 옳음이 증명되었다. 따라서 각 정부는 세금을 이용하여 최소 모든 남성에게 한정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의 성적 기능을 완전히 제거하여 인류 평화를 위한 길에 이바지해야할 것이다.

또한 필연적으로 필자가 펼치는 주장은 모든 성적 폭력을 근절시킬 것이며 나아가서는 인류의 윤리적인 생산력 도모와 한정된 인류의 수명이 더욱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 영구 평화의 길은 곧 영구 거세의 길에 있다.

만약 여기까지 읽고도 필자가 제시한 진리를 납득하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너희 중 진리를 부정하는 자가 먼저 첫 돌을 던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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