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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연애 이야기/비가 그치듯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

결혼 이야기



어쩌다 보니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연애를 하다 보면 어쩌다가 그런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는 모양이다.)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냥, 이 사람과 결혼하면 어떨까, 하고 둘 다, 생각을, 종종, 한다는 것.

- 혹시 저번에 아기 생길 뻔 했던 일 때문에 생각해 본 거야?

- 아니, 그냥. 그런 생각을 한 지 좀 됐어. 내일 프로포즈를 하고 그러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게 놀란 표정 안 지어도 돼.

- 내일이라도 아마 예스를 할지도 몰라. Because I really like you, and I can try to be a better person for you.

- I don't want a better you, though. I like you as you are.

풀리지도 않을 연애를 하면서 허구한 날 결혼 타령을 하다가 모든 걸 말아먹은 전적이 있는 너는 일단 조심스럽다. 잠정적인 결론은 몇 년 뒤 학위 과정이 거의 끝나 갈 때 -- 그리고 웬만하면 둘 다 술을 먹지 않은 맨정신으로 --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 보자는 것이었는데, C가 몇 년 뒤까지를 생각했다는 사실이 더, 의외라고, 너는 생각한다.

- 근데, 너 아까 집에 들어와서 나한테 뽀뽀해주는 것 잊어버렸어.

- 그랬어? 맞아, 그랬네. 지금 두 번 해 줄게.


몇 년 뒤 일을 어떻게 알겠느냐만.

그 몇 년이 이태가 될지, 몇----- 년이 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그 알 수 없는 대화 후의 섹스는 이상하게 여유로웠다.

(여유 있는 섹스라는 것도 사실 이상한 개념이다.)

적어도 한동안은 서로를 잃어버릴 생각이 없음을 확인한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 생각이 없어 보이는 -- C는 언제나 네 생각보다는 생각이 많았었다. 작년 여름 네 집에서 이 주 정도 신세를 져도 되느냐고 물어보기 이전에도 주변의 친구들에게 숱하게 고민 상담을 -- "걱정 되게 많이 하더라구요. 얘랑 내가 어느 정도 관계인지 모르겠어, 아직 정식으로 사귀는 것도 아닌데 재워 달라고 물어봐도 되는 건가? 그러면서. 그래서 그럴 게 아니라 그냥 확실하게 물어 보라고 했는데, 결국 다 잘 됐죠 뭐." -- 했었다는 것도, 너의 어머니를 만나기 전에 통역하기 쉬운 문장 구조가 어떤 것인지 미리 찾아 보았었다는 것도, 너는 몰랐던 이야기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며 너는 3개월을 목표로 잡았었다.

단 3개월만이라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보겠다는 것도 당시에는 야심찬 일로 생각되었다. 네 이전 연애는 -- 좋게 말해 -- 유별났고, 주변을 둘러보아 관찰한 관계의 리듬들은 수 개월 단위로 짧아 보였고, 너는 -- 역시 좋게 말해 -- 못난 사람이었고, C는 유별나게 사랑스러운 사람이었기에 -- 석 달 이상 그 못남을 숨기고 속이는 것은 아마도 무리일 것이라 여겼다.

그 못나고 모난 것들을 속속들이 드러내도 사랑스러운 누군가에게 새로, 오래도록,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는 -- "I love every part of you." "Yeah? That's surprising. Even I cannot bring myself to love every part of me." "Then I must love you more than you love yourself." -- 아무도 네게 알려준 적이 없다.


그래도 못나고 모난 것들을 조금씩 고쳐 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아마 너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것들도, 조금씩 고쳐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너 자신에게 약속한 3개월이 이미 훌쩍 지나 있는 것처럼.


[비가 그치듯] 챕터는 이렇게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