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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연애 이야기/비가 그치듯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

우리를 기억하는 건 우리겠니

우리를 기억하는 건 우리겠니



우리, 를 생각하기가 어렵다.

너와 내가 만나면 우리가 된다고는 하지만, 1인칭 복수라는 것은 애매한 이야기다. 감히 우리를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갑자기 쏟아지는 눈보라 때문에 너는 C의 집에서 주말을 보낸다. 거의 비어 갈 고양이의 물 그릇이 눈에 밟히지만 C가 끓이는 양파 수프 냄새도, 침대도 거역할 수 없이 따뜻한 탓에 너는 네 자신이 고양이인 양 C의 방과 주방을 오가며 -- 이따끔 기지개를 켜고, 20분 정도 낮잠을 자기도 하고, C가 만들어 놓은 음식들을 한두 점씩 집어 먹고, C의 룸메이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 주말 내내 노닌다.

- 나 주말 내내 이렇게 있어도 괜찮아?

- 네가 좋고, 주말을 너랑 보내는 것도 좋아.

- 그럼 다행이야.


우리는 이렇다, 고,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고, 상대방과 자신의 입장을 합쳐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언제부터일까.

- 눈 때문에 우버가 엄청 비싸네. 우버 풀로 계산해도 7불이야.

- 좀 기다려 보면 3-4불대로 떨어지지 않을까.

- 음. 아, 이제 4불까지 떨어졌다.

- 비싼데, 그래도.

- Well, you cannot buy time.

- You could buy thyme, t-h-y-m-e.

- ... Ha--ha.

- 어제 끓인 수프에도 넣었지.


우리, 를 말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제가 필요한 걸까. 우리, 를 말하는 것도, 일종의 자만인 걸까.

사실 너는 우리라는 대명사를 좋아해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경우 그 '우리'는 대개 '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 "우리의 꿈"은 "나의 꿈"이고, "우리나라"는 몇몇 높으신 분들에게는 언제나 "내 나라"였기에 -- 생각해 와서다.


다만 생각 없이 '우리'를 말할 수도 있는 관계가 가끔 아쉽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찾은 성격 요소 검사 결과를 나란히 비교해 볼 수도 있다면 -- "파하하, 너 이게 뭐야, K. 불안 백 퍼센트, 민감함 구십일 퍼센트, 정서 안정 삼십팔 퍼센트?" "넌?" "불안 십팔 퍼센트, 민감함 십이 퍼센트, 정서 안정은 생각보다 낮네. 팔십육 퍼센트." "상상력 팔십팔 퍼센트." "난 상상력 팔십이 퍼센트." "이 테스트 결과 공유하려다 내가 너무 이상한 사람 같아 보여서 안 했단 말야. 너만 보여주는 거야." "내가 아는 K 맞는 것 같은데." -- 우리는 우리에 가까워지는 걸까.

네 마음의 모든 명암과 요철과 굴곡을 낱낱이 드러내어 보여줄수록 -- "I like you, no matter how messed up you are." -- 우리에 가까워지게도 되는 걸까. 영화가 끝나고 나서 시간이 된다면 과카몰레를 만들어 옥수수칩과 먹고 싶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되는 그 시점에 -- "K, 나 사실 좀 배고픈데. 너 혹시 배 안 고파?" "음, 나도 가볍게 간식 정도 먹으면 좋을 것 같아." "그럼 집에 가는 길에 아보카도 두어 개만 사갈까? 슈퍼볼 볼 때 먹다가 남은 칩이 집에 있으니 과카몰레랑 먹으면 될 것 같은데." "나 지금 정확히, 과카몰레랑 칩이랑 먹고 싶다고 생각했었어." --  우리는 우리가 되는 걸까.


사랑이란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으로서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란다. 그게 아마 '우리'일 것이라고 너는 생각한다.

아직 그렇게까지 상처 받을 준비를 하고 싶지는 않다. 아프지 않아야 아프게 하고 싶다는 마음도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