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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연애 이야기/비가 그치듯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

금연애를 해본다면

금연애를 해본다면


슈퍼볼 중계를 아메리칸 뽀-이 일곱 명과 함께 보았다.


다가오는 발표 때문인지 C는 다소 압력을 받고 있는 눈치다. 토요일 밤 그 압력을 온몸으로 다 받아낸 너는 화장을 지울 기운도 없어 C의 겨드랑이에 머리를 묻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느릿느릿 둘 다 눈을 떴을 때는 -- "Morning, handsome." "Morning." "What time is it?" "Eleven." "What?!" "Yeah, I thought it'd be, like, nine." "How'd this happen?" -- 해가 이미 중천이다. 피로 때문인지 전날 먹은 짠 음식 때문인지 눈꺼풀이 잔뜩 부어 있는데, 쌍꺼풀이라는 개념조차 잘 모르는 C는 아마 -- "너 오늘따라 되게 예쁜데 왠지는 모르겠다." --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너는 아이섀도우를 눈두덩에 발라 이럭저럭 위장을 마친다.

아침을 챙겨 먹고, 차례로 샤워를 하고 -- "자, K, 내가 원하는 바는 전혀 아니지만 이제 옷을 좀 입는 게 좋겠어. 곧 나가야 돼." -- 인근의, 카페를 겸한 브루어리로 향해, 커피를 시켜 놓고 세 시간쯤 함께 책을 읽는다. 너는, 그저, 피곤하다. 하품을 연신 해 가며 과제인 책을 읽어 내려간다. 하루에 여덟 시간 꼬박 잠을 자는 탓에 네게 자주 놀림을 사는 -- "Eight hours. So decadent." "Yeah, I'm such a sleepyhead all the time." -- C는, 네가 졸음으로 머리도 가누지 못하는 것이 우스운 모양이다.

- Who's the sleepy one now?

- Will you judge me if I nap while you're cooking?

- I'll be amused, but, no, I won't judge you.

- It's partly your doing, you know. I don't even think I was fully conscious when I fell asleep last night.

- Good. I like putting you in that state.

주문한 맥주는 -- "블라인드테이스팅이야, K." "음, 난 저게 더 좋아." "이거? 더 어두운 색이니까 아마 이게 벨기에 에일이겠지? 이걸로 주세요." -- C가 준비해 간 큰 유리병에 담겨 나온다.


버팔로 윙 소스 범벅의 콜리플라워를 맥주와 함께 먹으며 -- "풋볼 볼 줄 알아, K? 설명해 줄까." "하하, 내가 학부 다닐 때 앤드류 럭이 있었잖아. 그 때 사람들이, 풋볼 보기 시작하려면 지금이 좋을 때라고 하길래. 그래요, 하면서 보기 시작해서, NFL에서 응원하는 팀은 없어도 룰은 대충 알아." -- 경기를 본다.

레이디가가는 이전보다 얌전한 차림으로 뼈 있는 노래를 부른다. 너는 톰 브래디와 트럼프를 생각하고, C와 가장 친한 룸메이트는 -- 걸핏하면 너와 C를 번갈아 놀리는 -- "너희 좀 시끄러운 편이야, 알지." "C, 목에 그게 뭐야?" -- 운동을 해야 한다며, 매 터치다운마다 버피 10회 -- "버피 그렇게 하는 것 아닌데." "시끄러워, K." -- 매 리뷰마다 팔굽혀펴기 10회, 같은 룰을 만들어 바닥과 허공을 오간다.

묘기 같은 역전승을 보고 난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C와 너는 일찍 잠들기로 한 애초의 계획을 포기하고 새벽 두 시가 되도록 몽롱한 섹스를 한다. 역시나 씻을 기운은 몸 어디에서도 나지 않아 너는 병든 가축처럼 잠이 든다.


그리고 월요일. 너는 종일 몸살로 끙끙 앓았다.

교실이 덥지 않은데도 뺨과 눈가와 목덜미가 열기로 달아올라 어지럽다. 건물 밖으로 나서니 오한으로 몸이 덜덜 떨린다. 주말 내내 혹사한 골반과 허리가 저리다. 매운 것이 먹고 싶어, 토요일에 사다 두었던 두부 한 모를 썰고 팬에 부쳐 고추장과 참기름을 섞은 양념에 버무린다.


그냥, 문득, 연애를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발정이라도 났느냐며 영문을 몰라 하던 전 애인이 들으면 기가 막힐 노릇일 테다.

자로 사는 법부터 배웠어야 하는 건지. 몸이 피곤하면 다 내려놓고 싶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