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에 바다를 바라보면, 둥둥 떠 있는 부표가 새까만 사람 머리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어느 위치에 어떤 부표가 있는지 꿰고 있는 나는 그게 당연히 사람 머리가 아닌 줄 알면서도 사람 머리라고 생각해버렸다. 그러면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심심찮게 외지인들이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하곤 하지만, 그들은 운이 좋으면 퉁퉁 분 모습으로 돌아왔을 뿐 스펙터클한 광경을 연출하지는 못했다. 물 위에 사람 머리만 덩그라니 있다면 부표처럼 속이 비어있으려니 생각하면 내 머리가 텅 비어버리는 것처럼 시원한 느낌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달렸다. 아쉽게도 이제 바다는 너무 멀리 있다.
내륙에서는 비린내가 난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말이기 때문에 한 번도 입밖으로 내본 적이 없었다. 이 나라의 말로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저 생선의 냄새가 난다는 아주 피상적인 표현만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륙에서 나는 비린내는 그것과 다르다. 바다에서 나는 비린내는 항상 쉼없이 뒤척이기 때문에 나는 냄새라고 생각했다. 내륙은 가만히 있어서 비린내가 난다. 오랜 시간 한 자리만을 지켜온 바위에게서 욕창 걸린 환자의 냄새가 난다. 보이지 않는 진물이라도 흐르는 것 같아서 왠지 산 근처로는 가고 싶지 않다. 다행히도 이 나라는 평지가 산보다 많아 보인다.
날마다 지나가는 길에는 우체국, 문방구, 빵집, 유기농산물 판매점, 문 닫은 미용실, 또 빵집 그리고 은행이 있다. 게임 속의 마을을 꾸미듯 길 양옆으로 나란히 놓여 있어서 처음에는 우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서 그런 거였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기만 해도 수평선이 보이는 집이 있는 것처럼 이 동네는 가게들이 그런 식으로 배치된 것이 일종의 법척이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마을 지도를 그려오라는 숙제를 받아본 기억이 났다.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가에 앉아 슈퍼마켓, 공판장, 친구들 집, 우리집을 그렸지만 아무리 잘 해보려고 해도 만족할 수가 없었다. 왠지 여기서라면 아주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백 가구가 비슷한 듯 다르게 생긴 집에 사는 데도 전부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카파도키아 헤븐. 두 개나 있는 빵집을 기억하면서도 자꾸만 잊어버리게 되는 가게였다. 약간 주황빛이 도는 어두운 조명 때문에 그런 걸까, 낯선 지명이 들어간 가게 이름 때문에 그런 걸까. 카파도키아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본 적은 없었지만 열기구들이 그림엽서처럼 박혀 있는 사진은 기억이 났다. 열기구라고 한다면 처음에는 흐릿했다가 점점 선명해지는 한 장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안과에서 눈을 검진할 때면 의사는 항상 조그만 렌즈에 눈을 가까이 대고 사진 가운데에 보이는 열기구에 초점을 맞추라고 했다. 노랑과 갈색의 구름 덩어리던 것이 각이 지고 선이 또렷해지면서 예쁜 열기구 모양으로 변해갔다. 왠지 그 배경이 카파도키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게 구석에는 누군가 하는 사람이 있을까 의심스러운 슬롯 머신 비스무레한 기계 세대가 비좁게 서 있었다. 유치한 색깔로 화면이 반짝거리면서 바뀌었지만 많이 달려 있는 버튼들은 용도조차 짐작하기 어려웠다. 언젠가 외국의 빠찡꼬에 들어가서 만원 가량을 집어넣고도 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 구슬이 전부 쏟아져내리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던 기억이 났다.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이 레버를 잡은 내 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지만 움직이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싶어서 약간 저항하는 느낌으로 손을 돌렸다. 어쩌면 그래서 아무런 소득도 없이 나와 자동문이 닫히며 소음을 잘라먹는 순간 허망해졌는지도 몰랐다. 혹시 그때 가만히 있었으면 엄청난 구슬이 터져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도 알지 못하는 기계 앞에 앉고 싶지는 않았다.
이 나라 사람들보다는 차라리 나에 가까운 얼굴을 한 점원에게 케밥을 주문했다. 전동강판 같은 걸로 둘둘 돌아가는 고기를 썰어내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근처 테이블에 쓰러지듯 앉았다. 이 나라 말로는 '나를 앉힌다'라는 표현이 가능했으므로 머릿 속에서 '내가 나를 앉혔다'고 되뇌어보았다. 문득 터키어를 배워서 점원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순간 잘못 들었나 생각하며 이 나라 말로 반문할 것이다. 그때 다시 말해본다면 눈웃음치며 대화를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점원이 터키어를 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가치가 큰 동전을 건네주고 케밥을 받으며 나와 점원은 아마도 둘 다에게 외국어일 말로 인사를 주고 받았다.
이 나라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이 나라 음식이 아니라 케밥일지도 몰랐다. 내가 여기 와서 제일 많이 사먹는 음식도 케밥이었다. 어떤 요리를 만들어 봐도 그 음식은 이 나라도 내가 온 나라도 아닌 지금 내가 사는 작은 방의 것이었다. 그러니까 현재로서 내 국적은 내 방이다. 점원이 카파도키아에 가보기나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에게는 최소한 카파도키아 헤븐이 있다. 마찬가지로 비록 유효한 여권을 발급해주거나 정말 바닷비린내가 가득한 음식은 없더라도 내 방은 단순하게 말해서 헤븐이다.
(노트)
경계가 불분명하게 살다보니, 경계가 불분명한 글을 쓰게 된다.
전부 거짓이어도 좋고 전부 사실이어도 좋지만
이 글만큼은 사실이다.
헌정까지는 아니고 내 이야기가 방으로 수렴된 건 아마 다른 배설 필진의 글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점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