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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배설>/에이넉스

리뷰 - 카운슬러

 카운슬러 리뷰(약스포)


 9.2/10



 이 영화는 결코 기존의 '그냥 스릴러'가 아니다. 무슨 말이냐면, 주인공이 과연 어떻게 될까에 대한 서스펜스를 즐기는 기존의 문법을 그대로 따라가는 고분고분한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감독과 각본을 고려해본다면) 주인공과 조연들은 일단 죽거나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어있다. 그것은 정해진 결말이다. 그러니깐 이건 '스릴러'보다는 '호러'에 가까운 장르이다. 이 마약 카르텔은 그 자체가 하나의 조직화된 '안톤 쉬거'(코맥 맥카시의 노인의 위한 나라는 없다에 나오는 킬러)이며, 러브크래프트적인 코스믹 호러이다. 명시적으로 우주적인 존재는 아니지만, 어두운 세계를 지배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태연하게 살인을 저지르고 스너프 필름을 만드는 이들의 모습은 코스믹 호러가 자극하는 '너무 거대해서 이해할 수도 저항할수도 없는 무엇'에 대한 공포에 뒤지지 않는다. 끝까지 도망가서 살 줄 알았던, 그리고 스스로가 살 수 있을거라 자신만만했던 웨스트레이(브래드 피트)가 결국 올가미에 걸려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저항하려는 손가락조차 잘려나간다) 사망하는 모습은 이 코스믹 호러의 백미이다. 아무리 애원해도, 멀리 도망가도,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어도, 카르텔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 거대한 호러는 세 희생자들을 면면히 옥죄온다. 따지고 보면 그들이 직접적으로 잘못한 것은 없다. 다만 상대는 설득이나 논리가 통하지 않을 뿐이다. 상대는 누군가가 책임지기를 원하고, 그 책임은 죽음이다. 그 카르텔 앞에서는 조직원들의 생사 역시 그저 유희대상에 불과하다. 책임을 지우는 것은 말키나(카메론 디아즈 분)이다. 우아한 자태를 한 그녀는 냉철한 잔혹성으로 철저한 이해타산을 쫓아간다. 한마리 잘 빠진 표범과도 같다. 우아한 자태는 그것의 성질(what it is)이고, 그것의 무자비한 사냥은 그것이 하는 일(what it does)이다.  



 자본주의의 정점에 선 이들은 이렇게 사람들을 움직인다. '돈'과 '섹스'와 '공포'로. 사람들은 섹스에 홀리고, 돈을 쫓고, 공포에 지배당한다. 그것을 지배하는 거대조직 앞에 모든 것들이 - 사랑과, 순수와, 돈과, 노력과, 생명이 - 찢겨나간다. 연인과의 불멸을 원했던 변호사는 연인이 스너프물에 희생당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성욕에 빠진 사업가는 자신의 여자에게 사냥당했다. 돈과 자신의 재능을 믿었던 중개인은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죽음의 올가미에 목이 잘렸다. 이런 거대한 아이러니를 만들어 희생자들을 찢어발기는 맹수들은 돈과 성욕에 복종하는 자들이다. 도덕이나 종교는 그들에게 조롱거리에 불과하다. 그 모든 것 위에 카르텔이 존재하고, 그들이 던져내려주는 '돈'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돈과 섹스와 공포가 모두 뒤섞인 존재인 말키나도, 그리고 (그녀가 말한대로) 미국 사람들도, 모두 시킨 일 하나는 끝내주게 해낸다. 



 영화는 그러하기에 잔인하다. 비쥬얼적으로도 잔인하지만, 그 플롯은 그 이상으로 잔인하다. 왜냐하면 그 '잔인함'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멕시코는 현재 실질적으로 마약 카르텔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SNS를 통해서 마약 카르텔을 비판했던 청년이나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시장들은 공공장소에 교수된 시체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영화의 내용 - 어떤 유능한 변호사 하나가 단 한번의 선택의 실수로 바닥끝까지 떨어지는 이야기 - 역시 언젠간 일어날 법 하며, 또는 일어났었을지도 모른다. 또는 이 대한민국이 멕시코처럼 카르텔의 지배를 받게되지 않으리라는 보장 역시 없다. 당신 역시 부지불식간에 그 안에 빨려들어갈지 모르는 일이고. 그것이 이 영화의 다른 그 어떠한 상상속의 우주적인 공포보다 소름끼치게 만드는 것이다. 

 

 더 뻗어나가자면 이 영화는 인간성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게 된다. 온도 없는 냉철한 사실들에 의해 움직이는 자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먹여살리는 수요자는 대체 누구인가. 이 우주적인 공포에 비견될만한 카르텔을 만들어낸 존재는 대체 누구인가. 바로 인간이다. 인간의 군집에 불과한 이들이 인간 위에 군림하게끔 만든 것은 또 누구인가. 비겁하고, 나약하고, 비열하고, 잔혹하고, 탐욕스럽고, 오만하고, 발정난 존재들, 바로 인간이다. 그것이 코맥 맥카시가 지적하고자 말하고자 했었던 가장 어두운 인간의 모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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