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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배설>/에이넉스

첫번째 크리스마스

 나의 첫번째 크리스마스(If all else fail)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내 시계바늘은 지난 십여년간을 거꾸로 돌아 이제는 모든 것이 어렴풋한 2001년에 도달하게 된다. 나에게 2001년 이전의 나에게는 실질적으로 크리스마스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내가 초등학교 4학년, 그 모든 것들을 차츰 알아가던 때의 이야기이다.  


 순진하게도, 나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산타의 존재를 믿었다. 변명을 하자면, 그 전까지는 아무도 나에게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미디어에서는 여전히 산타를 말했고, 성실하게도 크리스마스 아침에는 언제나 트리 밑에 선물이 있었다. 그것이 내가 꼭 원하던 선물 - 포켓몬스터 피카츄버전과 그것이 돌아가는 에뮬레이터 등의 - 은 아니었을 지언정. 그러나 그때도 어렴풋하게 짐작 정도는 하고 있었다. 그러했기에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오히려 무덤덤하게 받아들였기도 하고. 


 2001년 12월 셋째주가 되어서야 엄마는 나에게 산타의 비밀을 알려주었고, 우리 가족은 서로의 산타가 되어보기로 했다. 그것이 나의 첫 크리스마스 쇼핑이었다. 나는 누나와 한푼 두푼 모은 용돈으로 대체 무엇을 사야 가족들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미금역 골목길 구석 구석을 돌아다녔다. 그때 갔었던 가게들 - 모닝글로리 같은 작은 문구점부터 미금역 자영업 대박의 상징이었던 장영실서점까지 - 이 이제 더이상 남아있지 않아도, 수만번 걸었던 거리와 그 모든 기억들이 서로를 희석시켜버린 뒤에도, 미금역 거리를 떠나 판교로 이사온 지 벌써 반십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그 순간만큼은 아직까지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힘들었던 첫 크리스마스 쇼핑을 끝낸 누나와 나의 손에는 엄마를 위한 책 한권, 아빠를 위한 파커 샤프(볼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파커는 확실하다) 한자루가 들려있었다. 아빠 선물은 유달리 고르기가 어려웠었다. 뭘 생각해봐도 아빠는 이미 가지고 계셨다. 그게 아니라면 감당할 엄두도 못낼 정도로 비싼 것들이었다. 조금 시계답게 생긴 시계는 대충 몇십만원은 족히 넘어갔었다. 시계가 몇십만원을 넘어서 몇천만원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생이 되어서였다. 할머니께 드렸던 선물은 손수건이나 스카프 류의 천으로 된 것으로 기억한다. 누나는 나에게 그당시 유행하던 탑블레이드 드래이거 팽이를 선물해줬다. 사실은 중국산 짝퉁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짝퉁도 진품도 너무 넘치는 마당이라 누나도 모르고 선물했었을 것이다. 


 이브날 저녁은 엄마의 시간이었다. 우리 가족은 식탁에 둘러 앉았고, 엄마는 평소엔 좀처럼 쓰지 않는 냅킨이나 나이프, 포크 등을 식탁에 차려놓으셨다. 역시 좀처럼 쓰이지 않는 식탁용 백열등이 분위기에 주황빛을 더해주고 있었다. 후추가 뿌려진 옥수수 수프부터 시작해서, 우리는 경양식풍의 식사를 시작했다. 그날의 메인 요리는 엄마가 직접 만드신 수제 함박 스테이크였다. 부드럽게 퍼지는 함박 스테이크의 감촉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건 그 어떤 말이나 선물보다 더 값진 위로였다. 조금씩 눈물이 나려고 했고, 나는 가족들에게 그것이 보이기 싫어서 몰래 삼켜야만 했다. 


 지금 돌이켜보더라도, 2001년은 정말 힘든 해였다. 시종일관 화목했던 초등학교 3학년 때와 다르게 상황들은 나에게 적대적으로 변해갔다. 전학을 와서 매일 붙어다녔던 최초의 '베스트 프렌드' 둘 명은 4학년이 시작함과 동시에 모두 전학을 가버렸다. 급격하게 살이 찌기 시작했고, 학교 차원에서 실시한 건강검진에서는 반에서 유이하게 비만 판정을 받았다. 불어난 살과 남들보다 더 일찍 찾아온 변성기, 그리고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괴악한 병은 컴플렉스가 되어 나를 옥죄기 시작했다. 기본 인터넷 선으로는 크레이지 아케이드나 버디버디를 할 수 없었고, 아이들은 운동을 잘 못하는 나를 축구나 와리가리에 끼어주지 않았다. 부모님께서는 아무 말씀 안하셨지만, 성적마저 처참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비참한 기말고사 성적에 누구보다도 실망했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 비극적이게도,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가져본 것도 그때였고, 그것을 고백하기에는 내가 너무 찌질하다는(그당시에는 그런 단어도 없었지만) 것을 인지했던 것도 그때였다. 그러나 2001년의 회상들 중, 그 무엇보다도 선명하게 빛나는 것은, 그렇게 힘들었던 한 해의 그 모든 기억들이 아닌 그 크리스마스의 기억이다. 마치 그 모든 역경과 역겨웠던 일들이 오로지 그 찬란한 크리스마스 저녁식사 하나를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승승장구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단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 뒤로 내가 이렇게나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리라는 것 역시 몰랐었다. 그저 그 한해가 힘들었고, 다시는 이렇게 힘들지 말았으면 했을 뿐이었다. 애석하게도 삶은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고, 나는 그때는 상상도 못할 삶의 고통들을 - 심지어 상당수는 현재진행형인 -  견뎌내야만 했다. 더 많은 인간관계의 갈등을 겪어야 했고, 더 심한 질병들과, 더 많은 사랑의 실패를 겪어야만 했다. 우울증과 불면증은 내 존재를 위협했고, 결국 나는 고시에서 낙방해야만 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들에서 나를 울게 만들고, 부둥켜 세워, 다시금 삶의 무대로 끌어올린 것은, 언제나 그러하였듯, 가족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했었던 순간들의 추억이었다. 그리고 그 가족들에 대한 기억은 나를 2001년 12월 24일로, 참던 눈물을 방에서 몰래 흘리던 그날 밤으로 데리고간다. 그때의 울던 나와 더불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나면, 그리고 그날 먹었던 함박 스테이크의 맛을 다시 떠올리고 나면, 그제서야 나는 다시금 삶의 무대 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실패할지라도, 나에게는 그날의 저녁 식사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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