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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연애 이야기/비가 그치듯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

오픈 유어 ---

오픈 유어 ---


열쇠 돌아가는 기척에 고양이가 벌써 방문 밖으로 뛰쳐나간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너는 깜짝 잠에서 깨어난다.

- Hey. 

두어 시간 눈을 붙이고 일어나 작업을 할 생각에 컨택트렌즈도 빼지 않고 잠이 들어 시야가 침침하다. 혀도 뇌도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아 너는 영문을 모른 채 흐릿한 실루엣에 초점을 맞추려 애쓴다. 스탠드 불빛에 찬 겨울밤 냄새과 네가 잘 아는 모직 코트 냄새가 몽롱히 섞여 온다.

그림자가 익숙한 몸짓으로 옷을 슥슥 벗어내고 네 머리카락을 쓸어넘겨 뺨과 이마에 입을 맞춘다.

- 아, 나 오늘 여기서 잘 거야. Q가 친구들을 데려와서 파티를 하는 중인데 시끄러워서 잠이 들 수가 없어서. 깨워서 미안해. 금방 양치하고 올게.

C가 화장실에 간 사이 너는 꾸역꾸역 몸을 움직여 침대에 공간을 만든다.


잠결에 눈을 떴을 때 너는 너를 안고 잠든 C와 네게 안겨 잠든 고양이 사이에 끼어 움직일 수 없는 상태다. 두 시간만 자기는 글렀구나, 생각하며 다시 잠이 든 네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여명이었다.


문을 열어요.

눈을 떠요. 

마음을 열듯 문을 열고 눈을 떠요.

Open your legs.


수일 전 너는 C에게 여분으로 복사해둔 아파트 열쇠를 하나 -- 비슷한 열쇠가 많을 것 같아서, 매니큐어로 표시도 해 뒀어. K 색깔로? 아니, 보라색. 아하, 내 색깔. -- 건넸었다. 만약의 경우에, 라는 것이 동기라면 동기이겠으나 그 만약이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인지 너는 딱히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열쇠를 건네는 일은 당신이라면 언제든 나를 열 수 있어요, 라는 뜻이 되는 걸까.

비밀이 없는, 오픈북을 자처하는, C는 물에 빠뜨렸던 네 휴대전화를 수리하려 보관하는 동안에도 -- 심지어 대기화면에 디스플레이된 문자메시지조차도 -- 읽지 않았다.

반면 너는 C를 만나고부터 열린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었다. 늘 솔직할 것. 원하는 바를 확실히, 굽힘 없이 말할 것. 마음에 그림자가 없을 것. 가능하면, 둘만 있을 때라면, 옷을 입지 않을 것.


C가 무단으로 밤을 열고 네 방에 들어온 것은 아니다. 잠든 네가 문자메시지를 -- 지금 혹시 바빠? / 나 지금 너희 집으로 가도 될까? 사람들이 와서 놀고 있는데 좀 시끄러워서. 가서 아마 바로 잘 거야. / 10분쯤 뒤에 우버 부를게. / 지금 차 탔어. 혹시 지금 사무실에 있다면 네가 집에 도착할 때쯤 아마 난 네 침대에서 잠들어 있을 거고, 지금 자고 있다면 최대한 널 안 깨우려고 해 볼게. 곧 봐. -- 미처 읽지 못했을 뿐이다.

네가 기꺼이 열쇠를 넘겨줄 수 있는 사람이 삶에 C뿐인 것도 아니다.


다만 옷을 벗고 화장실 불을 켜는 그 그림자를 보며 네가 C에게 몸과 마음과 집과 시간을 모두 열어두었음을 생각했다.

시트가 흥건히 젖어오고 네 골반이 감각을 잃을 때까지 네 몸 곳곳을 열어젖힐 권리, 나와 너라는 육체의 경계를 존중하지 않을 권리. 너를 실망시킬 권리, 행복하게 만들 권리, 위로하고 놀릴 권리. 네 공간의 자물쇠를 열 권리, 네 냉장고와 찬장을 열어 아침을 차려 먹을 권리. 일주일에 두 저녁쯤 네 시간을 담보로 잡아 둘 권리.

한때 존재했던 네 외골격[外骨格]의 점진적 소실, 비늘을 벗긴 물고기의 맨살처럼 말캉하고 슬프고 축축한, 어쩌면 다소 역겹기까지 한 네 영혼의 내실[內室; 內實].


이런 것을 구입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뼈 만드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너는 생각한다.

사랑스러운 것을 보고 죽음을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은 거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