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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배설>

J의 도서관(1): <아인슈타인의 대전쟁> By.  Joseph Frank."제3차 세계대전은 잘 모르겠지만, 제4차 세계대전에 쓰일 무기는 알겠군요. 나뭇가지와 돌멩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이 특이한 소설은 말 그대로 아인슈타인이 예견한 제4차 세계대전에 관한 미래 소설이다. 문명은 붕괴되었고, 모든 것이 원시 상태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또다시 4번째 대전쟁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상 소설의 전부다. 이 의도적으로 불친절하게 쓰인 소설은 어째서 3차 대전이 일어났는지, 어째서 문명이 붕괴되었는지, 그리고 심지어 어째서 4차 대전이 일어나게 되었는지조차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는다. 애초에 모든 기록조차 소설 속에서 소실되었기에, 우리의 1인칭 화자는 그것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남겨진 잔해로 과거를 추측하지.. 더보기
배설이 죽었슴다--; * 쓰기 전, 제목에 대하여 1월 주제 'if all else fail'에 맞추어 쓰는 죽음에 대한 짧은 글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장을 제목으로 삼았다. 가벼워 보일수록 좋다. 어디선가, 죽은 후의 사람은 근육에 힘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사체의 온갖 구멍으로 배설물이 흘러나온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아직까지 시신을 직접 본 적이 없으므로 이 도시괴담 같은 이야기의 진위 여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시신을 수습할 때 귓구멍이며 콧구멍 같은 데에 솜을 틀어막는 것을 생각해보면, 물론 오래 전 영혼이 빠져나갈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관습적인 행위일 수도 있겠지마는, 이 배설물 이야기도 아주 타당성이 없는 것만은 아니리라 생각된다. 게다가, 배설물이 어떻게든 체외로 나.. 더보기
#13.25 한심한 남자를 좋아하는 것에 대하여 원고번호 1 작희한심한 남자를 좋아하는 것에 대하여 형용사 「…이」 정도에 너무 지나치거나 모자라서 딱하거나 기막히다.~ 네이버 국어사전 나는 한심한 남자가 좋다.그건 아마도 그냥 남자가 좋다는 뜻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한심한 남자가 좋다. 보고 있으면 피식 웃음이 나오는데, 본인은 왜 내가 피식 웃는지를 잘 모르는--그러니까 뼛속까지 한심한--그런 사람이 좋다.딱히 그런 사람과 연애를 하고 싶다는 뜻으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심한 남자와 연애를 제대로 시작하라고 하면 그 한심함이 좋은 내가 더 한심해져서 아마 거절할 것 같다. 다만 연애를 하다 보면 한심하지 않았던 남자도 점점 더 한심해 보이고, 그 한심함을 '기막혀'하지 않기 위해서는 애초부터 한심한 것을 알고 무엇이든 시작하는.. 더보기
파업 공지 방금 게시글 수를 봤다가 제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치를 보이길래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전면 파업 혹은 휴업에 돌입합니다. 요구조건은 없습니다. 더보기
유인 미사일(The Manned Missiles) 극도로 단소한 감상이지만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커트 보네거트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없다. 대체 처음에 어디서 이름을 봤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제5도살장을 사놓고 번역이 기묘해서 읽지 않았다. 친형은 그걸 아주 재미있게 읽은 눈치였지만 난 그냥 방치해 둔 채 커트 보네거트를 내 가슴 속에 묻었다. 얼마 전 영어 공부가 하고 싶어서 시시껄렁한 키워드를 검색해보다가, 누군가가 올려둔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을 발견했다. 단편인데다가 전문이 올라와 있는지라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편지글 형식으로 된 소설은 원래 정말 안 좋아하는데도 말이다. 아니 그런데 영어로 써놓으니까 편지글로 쓰는 게 왜인지 더 멋져 보였다. 만약에 이걸 한국어로 옮겨놓는다면 합쇼체를 써야할텐데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아 .. 더보기
릴레이 소설1을 처음으로 이어씀 안경이 예뻤다. 차마 안경을 쓰든 안 쓰든 예쁘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옹졸하게 안경이 예쁘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기껏 청첩장을 보내준 전 여자친구에게 여행을 같이 가자는 말은 이 나이 먹고 할 말이 아니었다. 우리는 운명처럼 만나서 우연에 의해 헤어지곤 한다. 그게 껍데기뿐인 상상에 불과할 지라도 최소한 성현이 정아를 만나기까지는 수도 없이 많은 조건이 충족되어야 했던 것은 사실이었다.정아를 소개해 준 P선배는 정아와 같은 극회에 소속되어 있었다. 평소 말수가 적은 데다가 과방에 들어오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성현의 동기들은 그를 많이 어려워했다. 과방에 왔을 때 마침 그가 와서 어색하게 앉아 있으면 뜬금없는 질문을 툭툭 던지고는 몇 마디 나누다가 휙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절대로 쿨하다거나 하는.. 더보기
릴레이 소설1 눈을 뜨면 아침일 줄 알았는데. 침낭에 그대로 누운 채 눈만 깜빡거린 성현이 본 텐트의 벽은 아직 어두운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꿈을 꾼 것이 분명한데 분명한 건 꿈을 꿨다는 사실 뿐이다. 멀리서 새들이 만드는 소리도 들린다. 가지로부터 날아오르는 소리, 다시 내려앉는 소리, 방향 모를 지저귐. 소리야 어떻든 다시 잠들기 위해 눈을 감고 어깻죽지를 침낭바닥에 비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무색하게 점점 또렷해지는 의식. 이래서 해도 뜨기 전에 깨는 게 싫단 말이지. 앞으로 적어도 사흘 동안은 지금 못 자둔 잠 때문에 밑진 느낌을 가질 자신일 게 뻔했다. 그렇게 뒤척이기를 이십여 분 간 반복한 뒤 성현은 결국 다시 잠드는 것을 포기하고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안경을 찾아 손을 더듬거렸다. 안경이 한 번에 손에 .. 더보기
만일 그 모든 것이 실패한다 할 지라도, 나에게는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 이 글을 작희에게 바칩니다. 최근 누군가 자신의 MBTI 타입에 대한 설명을 포스팅한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들어가 나의 것을 확인해보았다. 뭐 내가 이미 어떤 타입인지, MBTI가 나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줄 수 있고 무엇을 말해줄 수 없는 지 등등의 한정성마저 다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호기심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페이지는 이런 말로 설명을 시작한다. "What's it like to be you?" I have to be directly in contact with people and know that somehow I am influencing what happens for them in a positive way. That is a kind of driving force in my l.. 더보기
#13 들기름으로 부친 계란후라이 원고번호 2 작희들기름으로 부친 계란후라이 겨울의 집 냄새는 고소하고 따뜻하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아직 사춘기에 접어들지 않은 동생들의 몸 냄새와 섞이고 음식 냄새와 섞여 밥 뜸 내음처럼 모닥이며 피어오른다. 사람 마음이 어찌나 간사한지, 공항에서 칼국수가 먹고 싶지 않느냐고 묻던 엄마의 말은 만류하고 미국 땅을 밟자마자 한국에 있을 때에는 손도 안 댔던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 물론 내가 칼국수를 먹고 싶다고 대답했어도, 나는 탑승 마감 시간을 1분이나 넘겨 보딩을 했기 때문에 아마 식사를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공항에 오면, 던킨도너츠를 아메리카노와 함께 사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한식을 다함께 먹고 나를 배웅하는 것도 퍽 즐긴다. 그렇게 떠밀리듯 미국에 와 놓고 보니, 집에 있을 때.. 더보기
승리의 방식 나는 돌아서 가는 게 좋다. 목적지가 있는 여행은 편리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적지에 도달하고, 또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것을 반복하다보면 처음 출발한 장소로 돌아오게 된다. 여기서 이동하는 과정은 중요하지만, 그저 수단에 불과한 느낌이다. 오히려 목적지에서 느끼는 감상과 그곳에서 겪는 사건들에 심취해 있기 때문에 이동은 보조적인 시간, 심지어 무용한 것으로까지 느껴지곤 한다. 시간을 절약한다는 이유로 야간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일이 그러하다. 물론 정지된 숙소에서도 잘 수 있고 기차에서도 잘 수 있다면, 기차를 택하는 일이 그리 이상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야간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버려지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다는 건 목적지 중심적인 사고다. 사실 여행에 대해 쓰고 싶지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