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번호 1
작희
전에 사라 룰이 쓴 고인의 핸드폰, 이라는 연극을 보고 리뷰를 쓴 적이 있다 (그 리뷰를 번역하여 올리려고 했는데, 번역하는 나도 번역한 것을 읽는 독자도 너무나도 괴로울 것 같아 참았다). 고인인 고든은 장기 밀매상으로, 심장마비로 인해 갑작스런 죽음을 맞는 바람에 생전의 사업이라든지 개인사 문제 같은 것들을 다 마무리하지 못해, 그의 핸드폰을 엉겁결에 가족에게 전해주게 된 진은 (핸드폰이 그녀의 손을 떠날 때까지, 그리고 떠난 후에도) 삶에서 끊임없이 저 세상 사람인 고든의 존재를 느낀다.
그가 입대 전 예약전송으로 하루에 한 통씩 내게 이메일이 오도록 설정을 해 두고 간 모양이다. 누군가의 대역을 하기 위해 나에게 보내져 오는 모든 것들은 이상하게도 존재감을 지니기보다는 블랙홀 앞에 쳐 둔 베일마냥 불길하게 펄럭인다.
2년 전부터 간다 간다 간다 말만 하던 군대를 그가 드디어 가게 되었고, 나는 약간의 진공 상태에 놓여 있었다. 공황이 아닌 진공이다. 아니면 공황이란 어쩌면 애초에 진공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공황이라는 말을 처음 배웠을 때 나는 거대한 암흑을 생각했었다. 공이 그 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건 중국어를 조금 더 공부하고 나서의 일이지만, 아직도 나는 경제대공황이라는 말에서조차 거대한 베큠을 본다. 경제대공황의 상징이 되어버린 여러 장의 흑백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너무나도 망연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공간과 인간이란 그 끝 한 글자를 나눔으로 해서 참 밀접한 관계에 놓인다. 사람이 있을 때에 어떤 공간은 참 유한하다. 사람이 공간을 채우고 있어서인지, 내가 공간을 보지 않고 사람을 보게 되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유한함이란 참 편안한 것이다. 내 생각에 인간은 무한함에 대처하는 방법을 아직 모른다. 사람이 없을 때의 공간은 무한하고, 솔립시즘이 깃들기에 참으로 좋은 곳이다. 진공 상태에 빠졌을 때 나는 천장의 얼룩을 세고, 책상의 무늬를 뜯어본다. 해안선의 모든 요철을 미분하여 더하면 끊임없이 긴 숫자를 얻을 수 있듯이 얼룩 하나하나를 들여다보아야만 할 때 내 방도 무한한 진공으로 변한다.
적어도 나는 그의 부재를 미리 통보받았다. 나는 통보 없이 그에게 부재를 견딜 것을 강요한 적이 많다. 그걸 모종의 빚 청산이라 생각해본 적도 있다. 어쨌든 그는 첫 3년을 핸드폰 없이 나와 연애했고, 그가 공중전화로 걸어온 전화를 끊으면 나는 공중전화로 상징되는 일방적인 블랙홀에 대해 멍하니 생각했었다. 핸드폰이 생긴 뒤에도 그는 종종 연락에 둔감했고, 내가 울고 울어도 그런 것을 바꾸는 데에는 일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선언했던 부재는 대개 조금 더 길었다. 나의 선언은 조금 더 모호했고 조금 더 희망의 여지를 주는 것 같이 들렸기에 아주 많이 치사했던 것 같다. 바빠, 아마 연락이 잘 안 될 수도 있어, 라든지. 핸드폰이 없어, 연락하기 힘들어, 라든지. 그 기간은 2주가 된 적도 있고 석 달이 된 적도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가장 완벽한 기다림은 체념이고, 그런 의미에서 그는 기다림에 능숙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여러 가지를 기다렸다. 그가 살이 빠지기를 바랐고, 기타를 배우기를 바랐고, 그냥 모든 면에서 조금 더 멋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1년을 기다리고 2년을 기다렸다가 하루를 별러 그를 쪼았고, 그는 돈이 없고, 군대에 가면 모든 걸 잊어버릴 거라고 했다. 군대에 다녀와서 모든 걸 하겠노라고. 그러나 그는 군대에 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 약속들도 무한정 미루어졌다. 어쩌면 그는 나도 체념하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는 웬만하면 소원했던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고, 그래서 아무것도 체념하지 않았다. 아마 나는 결혼해서도 아무것도 체념하지 못할 것이고 그래서 늘 조금 감사가 부족할 것이다.
수업시간에, 진공에 놓인 책 이야기를 했다. 바깥세상이 존재하지 않고 단 한 권의 책만 허공에 둥둥 떠 있더라도 비교문학이라는 분야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인지, 그런 주제의 토론이었고, 나는 보르헤스의 미로를 떠올리며 예스를 말했다.
사실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그냥 그가 사 주고, 함께 먹고 간 초콜릿 포장지를 버리지 않고 가끔 찬찬히 뜯어볼 뿐이다. 딱히 숨겨진 메시지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고, 텔레파시를 원하지도 않는다. 포장지에 프린트된 활자와 사진을 눈으로 따라가며 낱낱이 분해할 때 보게 되는 진공과 그 안에 떠오르는 무한의 환영이 그저 오묘하게 중독성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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