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남의 연애 이야기/짝사랑에 실패하는 n가지 방법

계절적 대안적 사랑

(친구 남자친구 분들 중에는 제가 남자친구 얘기 쓰는 걸 부러워하시는 분도 있던데. 제 남자친구는 참고로 제가 자기 얘기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합니다. 아닌가?)


원고번호 2
작희

계절적 대안적 사랑


아마 현실적으로 성취가 불가능한 소원이겠지만, 나는 떠날 때 신발을 좀 선물 받고 싶다. 신고 오래 걸어도 편안한 신발. 광야를 오래 걸어도 해지지 않고, 닳지 않을 신발. 물소 가죽 신발. 투박한 신발.

여자가 떠날 때 신발을 선물할 수 있는 남자가 있다면 아마 -- 떠났지만 -- 그 사람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걷는 길이 다르더라도 너의 꿈을 응원한다는 뜻이니까. 내가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에게 예쁘고 불편한 신발을 줄 이유는 없다. 굳이 준다고 하면 그것은 모욕의 한 방법일 것이다. 신고 오래 걸을 수 있는 신발을 주고 인연을 떠나보낼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요즘 '집'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생애 주기에 따라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고, 자녀들이 분가해 하나둘 집을 나가면 더 작은 집으로 옮기는 것이 이상적이란다. 스웨덴의 복지정책을 조사하고, 건축가 교수님을 만나러 다닌다. 그는 말을 마치고 나를 보면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결말을 잊지 말라고 했다. 세계를 구할 것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사람을 구하라고 했다.

말과 글로 세계를 구할 수도 있을까. 영어라는 간사한 말에 굳이 편승한 것이, 딴은 세계를 염두에 둔 움직임이기는 했다. 말과 글로 너를 구할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는 소네트로 사랑하는 이를 소멸의 운명으로부터 구했다.


집을 생각하면 네 생각이 난다.

이십대가 되기 전에는 많은 것을 생각하고 계획했었다.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책을 어디에 어떻게 꽂고, 방은 어떻게 사용하고. 각자 작업 공간이 있고 방을 따로 써도 좋겠다고 너는 말했다. 그렇게 너와 한 음절, 한 낱말씩 쌓아 올린 집의 원형 때문에, 나는 철학 공부를 하면서 이데아를 생각할 때면 늘 집이 생각났다. (고대 로마인들은 집의 각 부분에 기억의 한 파편씩을 대응시켜, 집의 형태로 기억을 보존했다. 단지 기억만으로는 네가 네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너를 떠날 때는 별로 신발은 받고 싶지 않다. 너를 떠나는 것은 다시 만나려고 떠나는 것이고, 만나면 떠날 일을 다시 기약해야 한다. 우리는 일 년에 두 번씩의 만남을 바라보고 살아야 할 것이고, 그 만남은 아마도 계절의 순환과 함께 찾아오고 물러날 것이다. 네게 돌아온다면 그건 다시 떠나기 위함이고, 떠나는 것은 돌아오기 위함이다. 여름이 오는 건 겨울이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고, 추위가 사그라드는 건 이듬해에 다시 서리가 얼어야 하기 때문이다. 페르세포네 모녀든, 견우 직녀든, 농업과 기후의 주기에 따른 신화적 시간을 우리는 21세기에 누리고 있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겠다. 단지 너를 만나고 너를 보낼 때마다 세월이, 눈에 띄게 흐를 것이고, 함께 늙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무덤으로 향하는 체감 속도가 -- 한 번에 뗄 수 있는 걸음의 길이가 -- 남들과 조금 다를 것이라고. 방사성 원소의 반감기가 오면 -- 그러니까 50년 뒤에 -- 홋카이도에 해바라기밭을 보러 가자던 네 계획의 실현이, 성큼성큼 다가올 것이다.

시차 없는 공간을 공유하는 동안에도, 밤에 굳이 뒷걸음질을 하며 너를 마주보고 손을 흔들며 들어오는 이유는 그렇게 한 번 만나고 헤어지는 동안 꼭 계절이 바뀌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되어서이다. 한 번의 만남은 한 계절의 축소판이다. 우리가 만나는 예닐곱 시간 동안, 예컨대 매미가 땅 속에서 올라와 허물을 벗고, 머리 아픈 여름날 상공을, 나무에서 나무로 건너 날고, 짝짓기를 하고, 죽어 땅에 떨어지는 한살이가 일어나는 걸 나는 상상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아마 내게 걷기 편한 신발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야곱에게 고향은 고향이 아니라, 이정표이다.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여행은 끝이 나는 것이다. 출발점이 도착점과 같다는 수미상관의 개념이 아니다. 도착점은 또 다시 출발점이 되니까. 그러니까 나는 출발점에서 출발점으로, 그리고 또 다른 출발점으로 옮겨가는 것일 뿐이고, 그 출발점 -- 도착점 -- 이 너와의 재회이고 작별인 것이다. 물수제비 뜨듯이 살아도 멀리 함께 가면 되니까.

그래도 조금 더 욕심을 내면, 인생이 끝날 때쯤에는 마지막으로 너와 만나고 있는 중이면 좋겠다. 그 때는 아마도 신발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중간에 대한 욕심은 버린다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