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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연애 이야기/짝사랑에 실패하는 n가지 방법

가질 수 없는 것들의 박물관 1

야한 연애소설을 쓰기는 쓰는 거냐고들 하시길래. 뭐라도 조금씩 쓰고 있음을 증빙하는 자료로 올립니다.


가질 수 없는 것들의 박물관

#1 일랴


이삿짐이 가득한 방에서 여자는 언제나처럼 남자를 맞았다.

재회가 영 없을 이별도 있다.

그래서 남자는 어느 때보다도 길고 잠잠하게 여자의 성기에 입을 맞췄고, 여자는 눈앞에 오가는 남자의 얼굴을 피하지 않은 채 남자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마지막이라고 달라질 것은 없다.
입과 입이 만나 체액을 나누고, 입과 성기가 만난다. 남자는 늘 여자를 갖기 전 여자의 입을 먼저 원했다.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여자의 기도가 막혀오기까지 여자의 입 속으로 성기를 밀어넣었다. 그렇게 잠시 들숨과 날숨이 멈추는 순간이면 여자는 늘 어금니 안쪽을 눌러 오는 남자의 성기에 포진해 있을 통각신경에 대해 생각했다. 남자를 통해 여자는 딥스로트에 익숙해졌고, 피곤하도록 길고 거친 성교에도 익숙해졌고, 얇디얇은 애정을 덮은 채 서로를 먹고 머금는 종류의 관계에 대해서도 고찰하게 되었다.

마지막이라고 달라질 것은 없다.

미래에 맛볼 서로의 부재에 감전되어 서로를 깊이 끌어당길 뿐이다. 토스카와 그리움 사이에 놓인 그 무엇. 영혼이 허공으로 흩어질 때까지 서로의 몸 속으로 파고들어도 알 수 없는 어떤 것.


남자가 한때 BDSM에 심취해 있었다는 것을 여자는 그 마지막 대화에서 처음 알게 되었고 ("계속하기에는 비싼 취미여서 그만뒀지. 로프며 채찍이며 사들여야 할 게 너무 많거든"), 남자가 집에 돌아간 후 여자는 마지막에 처음을 이어 보았다.

겨울이라기도 봄이라기도 애매한 나날, 모호한 나날. 박물관 밖에 줄을 서 기다릴 때나 카페에서 사 온 커피를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서 나란히 마실 때면 남자는 여자의 목덜미에, 다리 사이에 언 손마디를 녹였다.


이튿날 아침 거울 앞에 서 흩어진 머리를 묶으며 여자는 남자를 만나러 비엔나로 여행하는 것을 상상한다.

- 너를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 내가 뻬쩨르부르크로 가거나, 네가 비엔나로 오지 않는 한은. 

- 내가 비엔나로 갈 수도 있잖아.

- 나를 어떻게 찾아낼 거지?

- 좋은 질문이네.

- 너는 찾기 쉬워. 너희 학과 사람들 프로필을 죄다 읽었지.

- 그 정도면 꽤 진지한 스토킹인데.

- 네 프로필만 읽은 게 아니니 괜찮아.


실은 나도 너를 찾았다고, 마음만 먹으면 나도 너를 찾아낼 수 있다고 여자는 말하고 싶다. 너를 알기를 멈추고 싶지 않다고. 내 세계에 남아 달라고.


내 세계.

거리를 걷다가 너를 만난다 해도 - 세계 그 어느 도시에서든, 뻬쩨르부르크, 비엔나,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서울. "어느 도시에서 죽게 될까?""그러나 이제 도시는 나의 굴욕과 실패의 地圖같은 것." - 네 다윗의 고수머리를, 네 손마디를, 네 입을, 네 존재의 숨겨진 아이러니 같은, 할례하지 않은 네 성기를, 만질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 어느 도시에서든 너를 만나게 된다면. 

네 언어로, 내 언어로 인사를 나누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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