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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연애 이야기/짝사랑에 실패하는 n가지 방법

이 모든 것이 또한 실패한다 해도

이 모든 것이 또한 실패한다 해도


이전에, "만일 이 모든 것이 실패한다 해도, 내게는 공립도서관이 있다"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사람도 동물과 같아서 이상적인 서식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나라가 될 수도 있고, 도시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직장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어느 장소에 가든 생활방식이 크게 변하지 않고, 도시와 금방 사랑에 빠지는 편이기 때문에 나는 나에게는 서식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요즘 느끼는 것은 내 서식지라는 게 이 생활방식 자체라는 사실이다. 좋은 도서관이 있고, 글을 쓸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유년기로부터 지금까지 지속되어 오는 내 서식지이고, 그것이 없어진다 했을 때에 내가 멸종하지 않을 거란 자신이 없다. [...]

따지고 보면 그런 이상적 서식지에 살고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렇게 보았을 때 사실 나는 배부른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에덴동산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기에. 만일 이 모든 것이 실패한다면, 사실 길은 많다. 다만 그 길들이 내 서식지가 아닐 뿐이다. 모든 야생동물은 아마 원시의 자연을 꿈꿀 것이라고 생각한다. [...] 가령 팬더는 끝없이 펼쳐진 태고의 대숲을 꿈꿀 것이고, 얼룩말은 세렝게티를 꿈꿀 것이다. 자기 서식지가 아닌 곳에 옮겨진 인간도 그렇게 원시림의 꿈을 꾸며 살아가는 것이다. 아저씨들의 '왕년에' 토크도 그런 꿈의 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실패하면, 그러니까, 나는 아마도 책의 숲을 꿈꾸며 살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http://baesul.tistory.com/98


글을 쓰겠다고 문득 결심한 것은 얼마 전 -- 얼토당토 않게도 서양 성인의 이름을 딴 바로 그 핑크빛 토요일에 -- 죽전에서 아메리칸 셰프라는 영화를 봤을 때다. 나는 영화를 볼 때는 되도록이면 '어떤' 사람 옆에서, 되도록이면 맛있는 맥주 한 캔씩을 몰래 숨겨 들어가 마시면서 보는 걸 좋아한다. 그 토요일은 일단 이상적인 영화 관람의 조건이 갖추어진 -- 꿀땅콩 안주에 우르겔과 너, 성공적 -- 날이었고, 너 또한 그 영화가 좋다고 했다. 라틴 음악과 음식이 스토리 진행의 구심점을 이루는, 맛있는 영화라는 것.

전철을 기다리며 너와 쿠바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 그 영화의 원제는 아메리칸 셰프가 아닌, 더 셰프다. (주인공 칼 캐스퍼의 손에는 El Jefe, 즉 The Chef라는 자부심이 타투로 새겨져 있다.) 내게 더 셰프라는 영화의 줄거리는 사실 지극히 단순한 것이었다. 주인공에게 요리는 삶의 의미다. 다른 일을 하고 싶은 생각도, 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 더 셰프는 그가, 더 이상 '삶'을 살 수 없게 될 위기를 이겨내고, 요리를 계속하게 되는, 즉 삶을 계속 살아 나가게 되는 이야기이다.

즉 요리하지 못할 때 그는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에게 이상적인 서식지는 주방이다.

Carl: Is this boring to you?
Percy: No I like it.
Carl: Yeah, well, I love it. Everything that's good that's happened to me in my life came because of that. I might not do everything great in my life, okay? I'm not perfect. I'm not the best husband and I'm sorry if I wasn't the best father. But I'm good at this. And I wanna share this with you. I want to teach you what I learned. I get to touch people's lives with what I do. And it keeps me going and I love it. And I think that if you give it a shot, you might love it too.

지난 몇 달 간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잠을 자려고 자리에 누우면 대학 도서관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책 등에 붙인 청구기호 라벨이 그리웠다면 이해가 가실는지.)

대학원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 나를 받아 주는 대학원이 필요했고, 돈이 필요했다. 집에 손을 더 벌려 가며 공부를 할 생각은 없었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당분간 공부를 접고 일자리를 알아볼 생각이었다. 홍콩 모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석사 학위를 받아 볼까도 고민했고, 이도저도 아니면 한국어 교사 양성 과정을 이수해서 어느 나라가 되었든 훌쩍 떠나 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성미의 장점이자 단점은 모 아니면 도라는 것인데, 문제는 이게 인생관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꿈이라는 것은 사실 정신적 사치고, 플랜 B를 가지고 자족하며 사는 것이 사실 가장 인간다운 삶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문학 공부라는 것 또한 사치스런 공부 아닌가. 돈을 벌어 주지도 못할 것이고, 애도에 대해 백 날 논문을 써도 세월호 앞에 그 모든 글귀가 무력해지는 것도 나는 보았다.

Full many a gem of purest ray serene     
  The dark unfathom'd caves of ocean bear:     
Full many a flower is born to blush unseen,     
  And waste its sweetness on the desert air.     
 
Some village Hampden that with dauntless breast     
  The little tyrant of his fields withstood,     
Some mute inglorious Milton here may rest,     
  Some Cromwell guiltless of his country's blood.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놓아버려도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상적인 서식지에 태어나 거주하는 사람은 사실 몇 안 될 테니까.


그런데 지난 몇 달 동안 모진 고민의 감옥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새치를 몇 달 새 다섯 가닥을 뽑아냈고, 머릿속에서 끊임 없이 솟아나는 고민이 싫어 화장실에 들어가 엄지와 검지로 총 모양을 만들어 관자놀이에 겨누어 보기도 했다), 내가 공부를 정말, 정말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공부할 기회를 거저 얻지는 못했다. 중학교에 들어갈 때는 단어 eight의 스펠링을 몰랐고, 고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는 dumb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 실력으로 외고 국제반을 들어갔으니 인생이 쉽게 흘러갔을 리 만무하고, 남들이 밥 먹을 때 숙제를 겨우겨우 하며 공부를 했다. 부모님 두 분은 고등학교 3학년도 중반에 이를 때까지 학부 유학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셨다. 그럼에도 전과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국제반에서 할 수 있는 공부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개츠비를 영어로 읽는 것이 좋았고, 르귄의 소설을 읽으며 사피어-워프 가설을 이야기할 수 있는 교실이 좋았고, 그 공부를 더 할 수 있는 곳에 가고 싶었다. (지금 돌아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당시 나는 내가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지 몰랐다. 현실적으로 어느 대학이라도 붙을 가능성이 매우 적었는데도.)

짧은 다리로 그 길을 바지런히 걷는 동안 내 인생의 모든 문을 열어준 것이 책이었다. 고등학생 때 꾸역꾸역 포크너의 단편소설들을 읽어나갔던 것도, 미국 땅 한 번 밟아보지 않고 미국 대학에 입학하게 된 것도, 대학에 입학해서 만족스러운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던 것도, 말과 글을 사랑해서였다. 너를 사랑할 수 있는 것도, 그 의미를 또한 진지하게 고찰할 수 있는 것도, 나보코프와 이리가레와 플라톤의 글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너와 루이스 칸을 말하고, 그의 신념에 따라서 '공간'을 꾸미는 것, 성서 이전의 방법에 따라 '이야기'에 편승함으로써 영생의 그림자나마를 얻어 보는 것.


작년 이맘때쯤 고민했듯이, 또 언젠가 '이 모든 것이 실패한다면'을 생각할 때가 찾아올 것이다. 작년 내가 찾은 해답은 공립도서관이었다.

지금의 답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여전히 답은 텍스트이고, 나는 어디에 가든 책 좋아하는 꼬맹이로 남을 것이고, 성서 중 제일 좋아하는 책은 아가와 시편(노래와 시!)일 것이다. 취미가 업이 되어 버려 요리든 연애든 새 취미를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여의치가 않았고, 나시고랭을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되어도 나시고랭 만드는 법을 써 놓은 요리책이 더 재미있는 게 그냥 내 팔자다.

그 모든 것이 몇 년 후 또한 실패한다 해도, 그래도 내게 답은 같은 것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