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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연애 이야기/짝사랑에 실패하는 n가지 방법

(쓰는 중) 액트 오브 킬링


액트 오브 킬링 (2014)

The Act of Killing 
9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
출연
안와르 콩고, 헤르만 코토, 시암술 아리핀, 하지 아니프, 사크햔 아스마라
정보
다큐멘터리 | 덴마크, 노르웨이, 영국, 스웨덴, 핀란드 | 159 분 | 2014-11-20


모 선배의 요청으로 작성하는 해설 및 리뷰입니다.

사실 제가 영화평론 전공도 아니고, 모국어로는 학술적 글쓰기를 해본 경험이 없어 (본문은, 하고 시작하는 류의 것이요) 썩 유려한 문장은 쓰지 못할 듯 합니다만, 영화를 보고는 그러지 않아도 비망록 겸하여 몇 줄 적어야겠다 생각하던 차라 간단히 적습니다.

일단 줄거리를 요약해야겠습니다만, 그 문제야 역시 제작자들 본인의 설명이 가장 간결하지 않겠습니까.

In THE ACT OF KILLING, directed by Joshua Oppenheimer and executive produced by Errol Morris and Werner Herzog, the filmmakers expose a corrupt regime that celebrates death squad leaders as heroes.

When the Indonesian government was overthrown in 1965, small-time gangster Anwar Congo and his friends went from selling movie tickets on the black market to leading death squads in the mass murder of over a million opponents of the new military dictatorship. Anwar boasts of killing hundreds with his own hands, but he's enjoyed impunity ever since, and has been celebrated by the Indonesian government as a national hero. When approached to make a film about their role in the genocide, Anwar and his friends eagerly comply—but their idea of being in a movie is not to provide reflective testimony. Instead, they re-create their real-life killings as they dance their way through musical sequences, twist arms in film noir gangster scenes, and gallop across prairies as Western cowboys. Through this filmmaking process, the moral reality of the act of killing begins to haunt Anwar and his friends with varying degrees of acknowledgment, justification and denial.

~ ActofKilling.com[각주:1]

다큐멘터리가 촬영되는 내내, 안와르를 비롯한 '제작진'들은 자신들이 '관찰'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듣기로는, 그 영화를 본 안와르는 한동안 오펜하이머 감독과 연락을 끊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비슷한 예를 들자면, 전두환 대통령이 자신의 업적을 영화화하고 싶다는 미국의 모 영화 감독과 만나, 자신이 제작과 기획을 총괄한다고 믿으며 모든 영화를 찍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감독의 관점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았으며, 전두환은 국제적 관중 앞에서 웃음거리와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는, 그런 시나리오입니다.) 거대한 물고기 형상에서 화려한--flamboyant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옷을 입은 여인들이 나오는 장면도, 땅 속에 머리만 내놓고 파묻힌 채 자신의 시체를 관조하는 안와르도, 폭포수를 배경으로 안와르에게 메달을 걸어주는 유령도, 모두 헤르만과 안와르 자신의 기획으로 촬영된 것입니다. 참고로, 안와르와 헤르만이 기획한 그 아방가르드하고 초현실주의적인 영화는 로맨스물이라고 합니다. 헤르만이 분한 공산주의자 여성과, 안와르 자신이 맡은 반-공산 청년대원의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지요. (시체를 관조하는 장면--여장한 헤르만이, 안와르의 시체에서 성기부를 절단하여 안와르의 얼굴에 비비는--이 그토록 성적으로 처리된 것도 바로 이러한 내적 플롯에서 기인합니다.)

일단 제목부터 이야기해 봅시다. Act of Killing은 중의적 의미를 지닙니다. 살육의 행위, 가 될 수 있겠고, 살육을 연기하다, 가 될 수 있겠습니다. 이 다중적 제목을 통하여 영화는 살육이라는 행위의 기원--아렌트적 주제죠--을 성찰합니다. 영화의 컨셉션 과정은 영화 서두에 설명됩니다. 오펜하이머 감독은 안와르와 그의 공범들에게, 자신들이 자행했던 살육 행위를 자신들이 원하는 그 어떤 방법으로든 연출하여 그것을 영화로 찍자고 제안합니다. 영화는 그래서, 헤르만과 안와르가 동네를 돌며 배우를 리크루트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평범한 아낙을 붙들고, 당신, 공산주의자 아내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고 묻고, 화교가 많이 사는 시장을 방문하여 협박과 금품 갈취를 재현합니다. 관객은 그 일련의 장면들이 모두 연출된 것임을 알고 있으나, 안와르와 헤르만이 그 여인의 집에 불을 붙이고, 생명을 위협하여 돈을 뜯어내는 장면은 몰입을 유도하기에 충분합니다. 영화는 현실과 허구,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오갑니다.

영화라는 장르--연극에서 출발한--는 몰입에 기반합니다. 왜 우리는 영화를 보며 실제로 공포심을 느끼며, 존재하지 않는 주인공에게 스스로를 이입하여 희노애락을 공유하게 되는지(물론 영화가 끝나는 순간 그 모든 이입 행위도 쫑납니다만,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몰입이 없이는 영화 관람이라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며, 아이맥스라든지, 3D영화라든지 하는 장치들은 전부 더 현실감 있는 가상현실로의 이입을 돕기 위해 발명된 것입니다)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와 이론이 있습니다만, 우리가 숨을 죽이고 화면을 주시하는 그 순간 우리는 화면 너머의 현실에 자기 자신을 대입합니다.

오펜하이머 감독은 현실과 허구를 오가며, 몰입과 소격의 반복적 경험을 유도합니다. 소격이라는 개념은 20세기 초 독일의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원래는 영화가 아닌 연극에 적용되던 것입니다. 연극 관람의 가치를, 아리스토텔레스를 위시한 비평가들은 대리 경험을 통한 '카타르시스'에서 찾았습니다. 장 라신의 페드르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주인공과 비슷한 비극적 감정을 일상에서 경험하지만, 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목놓아 울고 바닥에 구르기에는 점잔이 뼛속까지 배어든 사회적 생물들입니다. 그 원초적 감정의 해소를,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가상현실에 자신을 이입함으로서 얻어낸다는 것이, 브레히트 이전에 제시되던 연극적 가상현실의 기능입니다.

대부분의 영화는 그러한 가상현실의 기능을 극대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밖으로 걸어나올 때 정신이 잠깐 멍해지는 경험을 누구나 할 텐데, 그것은 가상현실에서 밀려나올 때의 일종의 후유증인 것이지요. 오펜하이머 감독이 액트 오브 킬링을 헐리우드식으로 처리했다면, 우리는 안와르의 입장에 자신을 이입하여 영웅적 성취감을 느끼거나, 희생자들의 입장에서 안와르를 악마화하였을 것입니다. 그러한 몰입 효과가 미상불 액트 오브 킬링에서도 일어납니다. 청년단이 '공산주의자' 마을에 쳐들어가 살육과 강간을 마친 후 마침에 불을 지르는 장면에서, 우리는 숨을 죽이고 화면을 주시합니다. 연기가 자욱이 올라오고, 아이들의 아우성이 들려오고, 성난 청년들의 목소리가 연기의 장막 너무로 울립니다. 여느 대중영화의 전쟁터와 다르지 않습니다.

반면 소격효과는, 거의 우스꽝스러울 만큼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또는 극도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그 어떤 장치를 통해, 관객들이 극중 상황에 전적으로 몰입할 가능성이 차단될 때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 마을 방화 장면은 곧, 촬영을 마친 스태프들이 아직 상황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역배우들을 달래고, 배우들에게 물을 건네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아이들은 '몰입'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헤르만은 (기막히게도) 자기 딸을 아역배우 중 하나로 썼는데, 우는 딸을 달래며, 괜찮아, 영화는 원래 그래, 잠깐만 무섭다가 다 끝나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보통 그 '잠깐만 무섭다가 다 끝나는' 부분--몰입으로부터 밀려나오는--은 영화가 다 끝난 뒤에 일어나는 것입니다만, 오펜하이머 감독은 지속적 소격효과를 통해, 한참 상황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관객의 정신을 다시 객석의 자기 위치로 되돌려 놓고, 다시 사실적 촬영기법을 통해 몰입을 유도하기를 반복합니다. 물고기 모양의 구조물에서 여인들이 춤추며 걸어나오는 장면--영화 전반에 걸쳐 끈질기게 나옵니다만--역시 그러한 소격효과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 장면들은 이야기의 어느 부분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고,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에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조금 더 부연하자면, Naomi Wallace의 Slaughter City라는 극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굉음 역시 관객의 몰입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극중 삽입되는, '정신 사납다'고 불릴 그 어떤 장치도 브레히트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형식적 특징은 영화의 메시지와도 맞물립니다.



  1. http://www.actofkilling.com/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