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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배설>/작희

#12.25 즈 수이 데졸레, 미안합니다, 나는 저버림을 당했습니다

연말연시 특집, 버터 바른 글을 써 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도 데졸레.


원고번호 1
작희

즈 수이 데졸레, 미안합니다, 나는 저버림을 당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지난 6년 동안 크리스마스에 남자친구가 없었던 적이 없다. 올해 한 해는 혼자 있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이렇게저렇게 들어온 싫고 좋은 약속들을 다 미루고 앞당겨 저녁을 집에서 먹었다.

연애를 하지 않게 된 후로 술은 늘었다. 물론 늘었다고 해 보아야 한 주에 싼 와인 한 병씩이다. 공기 빼는 도구가 없다 보니 일단 사 둔 와인은 일주일쯤 지나면 쉬어 있기 십상이라 작은 유리병에 나누어 담아 두는 요령도 생겼다. 와인이 있으면 혼자 보내는 저녁도 견딜 만 한 것 같았는데, 집에서는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되어 있고 '혼자'도 아닌 애매한 인원이 거실에 모여 있다.

눈치 안 보고 먹을 수 있는 술--냄새를 풀풀 풍기지 않아 컵에 따르면 감쪽같이 음료처럼 먹을 수 있는--이 필요해, 버니니를 한 병 사러 옷을 두텁게 껴입고 신분증을 챙겨 밖에 다녀왔다. 집 근처 마트엔 캔맥주뿐이라 호주산 쉬라즈 한 병을 점찍어 두고 오 분쯤 더 걸으면 나오는 편의점에서 버니니 블러쉬를 한 병 샀다. 내가 나올 때는 엄마가 외출 중이었기에 숨겨 들어갈 생각으로 쉬라즈 한 병을 더 사 집에 들어갔는데 엄마가 귀가해 있었고, 덕분에 술장 봐 온 것들을 베란다에 숨겨 두고 버니니부터 열어 마시는 중이다.

사실 쉬라즈를 열 수 있으면 쉬라즈를 열고 싶다. 옐로우테일의 라벨을 눈여겨보지 않았을 때는 그 마스코트가 캥거루인 것을 모른 채로 막연히 물고기의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다. 꼬리지느러미 아래쪽에 노란 줄이 하나 예쁘게 그어진 대양의 물고기 한 마리가 혀뿌리를 헤엄쳐갈 것 같은 이름이다. 하지만 한 번 연 와인은 2-3일 내에 마셔야 하기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와인과 물고기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어쩌면 세미나에 와인을 가지고 들어오셔서 학생들에게 따라 주시는 교수님 한 분이, 내가 이놈의 배를 가를 때까지--disembowel--기다리라고 말씀하시며 은박지를 벗기고 코르크를 따내시던 것이 생각나서일지도 모른다. 먹으려면 사전에 손질이 많이 필요하고 제거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일단 그렇게 해서 내용물을 활짝 열어 두어야 맛이 나온다는 점이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와인 수집과 열대어 수집이라는 것도 무엇인지 모르게 닮아 있는 행위이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나는 와인 얘기를 하는 작가들을 별로 안 좋아한다. 반도에서 나고 자라 와인 타령이나 하고 있는 내 자신도 탐탁치 않다. 비슷하게 만만한 전통주를 알고 있다면 추천해 주었으면 좋겠다.)


와인 이야기는 그만두고,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즈 수이 데졸레, 그러니까 미안하다는 뜻의 말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은 즈 수이 데졸레도 아닌 그냥 데졸레를 말하고 싶었다.

라틴 뿌리의 영단어를 기반으로 로망스 언어의 어휘를 더듬어 가는 사람으로서 단어의 어감을 맞게 이해할 때도 틀리게 이해할 때도 있지만, 데졸레에 있어서만큼은 지금의 이해를 계속 가지고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사실 프랑스어 자체로는 별 뜻이 없을 수도 있다. 그냥 말 그대로 sorry (sorry가 sorrow의 명사형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그러니까 슬프다, 유감이다, 가슴이 아프다, 등의 느낌이 들어 있는 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데졸레라는 말이 영어의 desolate와 닿아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그래서 나는 데졸레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썰렁한 바람 같은 것이 스친다고 생각한다.

원래는 데졸레를 말하고자 했지만, 생각해보니 즈 수이 데졸레, 라는 말은 나는 버려졌습니다, 하는 뜻도 될 것이다 (물론 그렇게 자주 쓰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보면 미안함과 외로움은 근본적으로 맞닿아 있는 심경이다. 미안할 때에는, 상대방에게서 그 무엇도 더 오지 않을 것이기에 외롭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는, 미안할 만한 위치에 있다는 것은 그 상대방에 대한 모종의 책임을 지니고 있었다는 말이기에, 그런 책임에서 외로움이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를 스스로 저버렸기에, 저버린 동시에 저버림을 당한 상태가 되는 것. 

이 시점에서 내릴 수 있는 가장 상투적인 결론은, 이런 연말도 한 번쯤은 있어야 (두 번이 될지 세 번이 될지, 평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데졸레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만, 그 이상의 뭔가가 분명히 있다.

외로움과 미안함의 교집합은 슬픔이다. 저버림을 당했기에, 그러니까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았기에 未安한 것이고, 마음이 편치 못하다는 말이 확장되어 사과의 말이 되었다. 반대로, 누군가에게 사과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은, 본인이 가해자가 된 상황의 이면에 있는, 피해자로서의 입지까지도 포괄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고의로 피해를 주었을 경우 대부분 미안해하지 않는다. 의도와 다른 결과가, 내가 예상치 못한 변수의 조합에 의해 일어났을 때에, 그러니까 그 변수의 조합이 나를 저버렸을 때에 비로소 내가 '미안'할 만한 상황이 도래하고, 저버림을 당했기에 나는 가해자이지만 혼자이고 쓸쓸하며, 나의 상황은 주민에게 버려진 마을처럼 적막(데졸레)하다.


모 친구가, 글머리에 지난 몇 년간 애인이 있었다는 말 없이도 이런 '찌질'한 글을 쓴다면 칭찬해 주겠노라고 했지만 그럴 용기는 아무래도 없었다. 그렇다고 딱히 불러내어 보고 싶은 사람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사실 연말에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이 정말 별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냥 불 밝힌 거리를 아끼는 사람과 함께 걸을 수 있는 것이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의 나는 불 밝힌 거리가 아닌 불 밝힌 부엌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다. 데졸레라면 데졸레다.

이 모든 것을 연애로 끌고 가고자 하는 이들은, 나의 메시지를, 내가 혼자 있게 된 것은 나의 의도와는 다른 것이며 내가 예측하지 못하는 변수에 의해 일어난 것이기에 나는 피해자이지 결코 못생기고 성격이 나빠서 애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하는 식으로 해석을 할 수도 있다. 사실 내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여기까지 글을 쓰고 난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에는 미안하다, 외롭다, 라는 두 가지의 말을 동시에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안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롭다.

(네이버 웹툰 '덴마' 4화 중에서)

요즘 점점 드는 생각으로는, 나이가 든다는 것이 곧 데졸레를 안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 같다. 물론 보고 또 봐도 눈물이 나는 데졸레의 상황도 존재하지만, 데졸레를 견딜 수 없다면 우리 모두는 자살을 해야 옳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이 엷어져 정보의 충돌이 없어지듯, 맡겨진 책임도 좌절스러운 변수도 점점 늘어나게 됨에 따라 데졸레를 견디는 면역력이 생겨나는 것이다.

글을 시작할 때는, 나의 데졸레에 미안함도 깃들어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 했었고, 슬슬 눈꺼풀을 배겨나지 못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 지금의 답은, 딱히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은 없다는 것이다. 단지 와인을 마시면 떫은 기분이 좀 사라질 것 같아 와인을 한 병 사 와 마시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크리스마스에 진정으로 양면성을 갖춘 즈 수이 데졸레를 외치게 되는 일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 꺼진 집에서 아빠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노트북과 책을 정리한다. 


‡desolate [désəlit] a.
① 황폐한; 황량한.
② 사는 사람이 없는.
③ 쓸쓸한, 외로운, 고독한.
④ 우울한, 어두운.

 
‡desolate [-lèit] vt.
① 황폐케하다; 살지 못하게 하다, 주민을 없애다.
② 돌보지 않다.
③ 쓸쓸하게[외롭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