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 <배설>/healingpen

만일 그 모든 것이 실패한다 할 지라도, 나에게는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

이 글을 작희에게 바칩니다.




최근 누군가 자신의 MBTI 타입에 대한 설명을 포스팅한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들어가 나의 것을 확인해보았다. 뭐 내가 이미 어떤 타입인지, MBTI가 나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줄 수 있고 무엇을 말해줄 수 없는 지 등등의 한정성마저 다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호기심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페이지는 이런 말로 설명을 시작한다. "What's it like to be you?"


I have to be directly in contact with people and know that somehow I am influencing what happens for them in a positive way. That is a kind of driving force in my life, actualizing potential, giving encouragement, letting people know what I think they can do. I have been told I have this uncanny ability to absolutely zero in on and intuit what people need. I sometimes recognize something about them that they have not said to anybody else. And they say, "How did you know?"

-'ENFPs -From Conversations with Discoverer Advocates' 중에서

나는 ENFP, 한국말로는 종종 '스파크형'으로 설명되는 '열정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사람이다. 이미 다 알고 있음에도 이 글이 새삼스럽게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아마 이 글 자체가 "너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일이니?"하고 물으면서 시작해서 '나'의 시점에서 말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페이지가 설명하듯, 누군가가 '자신'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는 것 인지 관심을 가지는 것이 나의 일이고 삶이기 때문이다. 줄곧 ENFP가 열정이 흘러넘쳐 일을 벌리고 다닌다는 점만 바라보고 있던 나는 새삼스럽게 그 열정들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이 페이지를 찾게한 MBTI에 대한 내 관심조차도 그런 것이다. 나 자신을 정의 내리고 싶어하는 마음이지만 그 마음은 더 나아가면 내 자신을 정리해 가꾸어 당신에게 내보이고 싶은 마음이다. 마치 다른 사람의 발전과 가능성을 꽃피우게 하려면 그를 먼저 알아보아야하는 것처럼, 나는 나 자신에게도 스스로를 알아보고 키우려는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아마 내가 여기서 말해진 것 중 한가지, 다른사람의 방향성을 잘 알아차리는 것에는 딱 들어맞지 않는 이유는, 그 부분이 나와 다르기 보다는 언제부턴가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내 자신의 '자람'에 온 집중을 쏟아버리기 시작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자신에 대한 이름표를 찾아 헤매는 일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내가 끌어 잡아왔던 이름들은 어느새 공중으로 다 흩어져버렸다. 어린아이였을 때는 '나는 이런 사람이예요'하고 한마디 또랑또랑하게 하고는 다른 사람을 열심히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점차 내가 알고 있는 나, 내가 바라는 나는 흐릿해져만 간다. 내 모습들에는 엄마 아빠가 바라던 '옳은 길'만을 걷는 착한 딸의 모습도 있고, 내 친구들이 기대하는 사리분별을 잘하는, 혹은 '엉뚱한 매력이 있는' 나의 모습도 있고, 세상이 바라는 '여대생'의 모습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이지만 내가 선택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절로 주어진 줄만 알았던 것들이 '주어지기도 하고 선택되어지기도 한 것'으로 떠오르는 순간에 나는 어디서 자라고 있었는지, 무엇을 향해 자라고 있는 지는 쉽게도 무너진다.

힌트는 늘 의외의 곳에서 튀어나온다. 얼마 전 우연히 친구가 과제를 위해 부탁한 단체 인터뷰에서 책에 대해 실컷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각자에게 책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내 답을 생각하는 동안, 말을 꺼내는 순간, 나는 내 존재 전체를 다시 깨닫는 기분이었다. 나는 울뻔하면서 '책은 내 삶의 전부, 이고 싶은 것'이라고 대답했다. 독서량도 미미한 주제에(옆에 '책은 휴식'이라고 대답한 사람의 한 3분의 1밖에 안되는 주제에) 뭔 삶의 전부냐고 하겠지만 그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을만큼, 그만큼 책이 좋다. 누군가에게는 책이 여가이고 휴식이며 미묘하게 '해야할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죄책감을 주는 행위이지만, 나에게 책읽기는 의무이며 가장 성스러운 일이다. 가장 강한 아우라. 그리고 다시 한번, 옆에 같이 인터뷰를 하던 선배가 나에게 있어 '책'은 '문학'을 말하는 것일 거라는 말을 해주었고, 나는 놓쳐버렸던 나의 바닥을 다시 찾게 되었다.

이걸 잠시 잊어버리게 된 여러 가지 이유 중에 하나는 아마 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석연치 않은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책을 덜 읽게된 하찮은 변명 가운데에도 그 느낌이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책 대신 사람의 페이지를 읽으려 돌아다녔다. 대학에 처음 들어왔을 무렵, 나는 책 자체도 좋아하지만, 그것보다는 책이 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더 좋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었던 것 같다. 대학으로 나타는 새로운 세상에서 수없이 쏟아지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 속에 허우적대며 나는 넘쳐나는 삶의 온갖 면면들을 다 끌어안고 이해하고 함께 살고 싶었다. 그 와중에도 '책'에 대한 집착은 여전히 버리지 못해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 보다는 읽는 사람들이 편했다. 그래서 대신에 내가 그때까지 생각했던 '책'이 아닌 다른 '책'을 읽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했고, 그들과 함께 삶을 살았다.

그 시간들이 분명 꽤나 행복하고, 무언가 향해 나아가는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뭔가 '모자라다'라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원래 모자란 것이 인간 삶의 정상태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서도 여전히 나는 부족했다. 그게 뭔지 알아차리는데에는 대학생활이 절반이 넘도록 지나야 했고, 책에 대한 인터뷰와 작희의 열번째 글을 만나야 했다. 나는 책이 필요하다. 내가 어린 시절에 책을 향해 들이팠던 이유도, 부러 책을 떠나 있던 시간들을 가졌던 이유도, 결국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의 여정을 함께하고 싶어서 였다. 그러나 굳이 내가 책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책으로 만나고 이야기하고 하는 것은 작희가 말하듯, 물고기가 물에서 사는 것과 같은 나의 서식이다. 연어가 아무리 바다에서 살다가도 알을 낳기 위해서는 강으로 돌아와야 하듯, 바다와 강을 둘 다 살아야 하는 것이 그들의 삶이듯, 나는 사람들의 삶을 직접 함께하다가도 책의 강으로 다시 돌아와야만 하는 것이다. 책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나는 알을 낳지 못하고 죽어버릴 것이다.

이런 나에게 가장 최상의 생활 서식이 있다면, 그건 바로 책을 읽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일 것이다. 단 한 사람일지라도, 두 가지의 삶을 동시에 만나고, 또 책을 읽는 나와 책을 읽는 그의 만남을 통해 우리가 네 가지의, 천 가지, 만 가지의 삶을 피워내는 기적.

삶이란 알 수가 없어서 평생 이른바 문과 공부를 하던 고등학생이 덜컥 약학과를 가기도 하고 언론정보를 전공하고 10년을 미디어에 대해서 연구하던 사람이 뜬금없이 의전을 붙기도 한다. 물론 이런 삶의 흐름들은 비단 '진로'만의 문제도 아니고 이렇게 딱딱한 말들로 단정 지을 일은 아니겠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예측하지 못할 삶의 궤적들이 꽤나 두렵기도 하다. 나는 누구보다 실패나 성공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자부하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좋아한다'고 서슴없이 말했던 한 가지가 무너지지 않았을 때를 가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을 말하는 일이 어느 때보다 너무나 커보였던 요 몇 년, 나는 그 커다람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사무실 책상 앞에서 열정과 성실로 프로젝트를 성공하는 상상으로 도망쳐 보았다. 책이 없는 곳에 서 있는 나는 상상으로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정말로 모르는 일 아닌가. 내가 어느 시점에 어디에 있을 지는. 확률이라든가 일관성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때로는 그 모든 것들을 뛰어 넘는 일도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내가 책을 말하고, 책의 숲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이가 있는 지금, 나는 삶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 지라도 나아갈 강의 물결이 있음을 안다. 때로는 실개천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단 한 사람의 존재가 거대한 아마존이 될 수 있음을 느낀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한 번 실패에 대해 자유로운 마음으로 말 할 준비가 되었다. 

만일 그 모든 것이 실패한다 할지라도, 나에게는 책의 숲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



안녕하세요, 뒷북왕입니다...

글에 나오는 MBTI 각 타입에 대해 일인칭으로 설명해주는 사이트는 http://www.bestfittyp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