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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배설>/작희

#2 군중 관음증과 간접살인: 뮤지컬 잭 더 리퍼와 시카고

원고번호 1
작희

군중 관음증과 간접살인: 뮤지컬 잭 더 리퍼와 시카고


              

Roxie Hart: Look at here, Mr. Mouthpiece. It seems to me that Im the one who's coming up with the good ideas. I'm sick of everybody telling me what to do. And you treat me like dirt. You treat me like some dumb, common criminal.

Billy Flynn: But you are some dumb, common criminal. [...] Maybe you'd like to appeal on court without me.

Roxie Hart: Maybe I could. Have you read the morning papers? They love me. 

Billy Flynn: There may be a lot more when you hang. You know why? 'Cause it's sold more papers.

~ Chicago


최근 미티 작가님의 웹툰 <악플게임>이 상반된 평을 받으며 연재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덴마를 읽으며, 완결되지 않은 웹툰에 대한 평을 자제해야겠다고 뼈저리게 느낀 터라, 아직 전개 초중반 단계인 듯한 웹툰에 대해 깊이 평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악플 문화와 온라인 이지메라는 현상에 다분히 관음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 하겠습니다. 익명의 다수가, 공공에 신변이 노출된 하나의 대상을 놓고 가학적 즐거움을 얻고, 그 가학행위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곳곳에서 벌어지는 소위 '키보드 배틀'을 보며 모니터 뒤에서 즐거워하는 수많은 피핑 톰들이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합니다. 이 포스트는, 두 개의 뮤지컬 <시카고>와 <잭 더 리퍼>에 표현된 군중 관음증의 모티프를 소개하고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각주:1]

위에 인용한 <시카고>의 변호사 빌리 플린의 말은, 언론에 의해 보육되는 군중 관음증의 핵심을 정확히 찌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살인범에서 일약 스타로 떠오른 록시 하트가, 성공적인 재판 결과를 위해 클라이언트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해 오는 플린 변호사에게 면박을 줍니다. 여성 살인범 사건을 맡아 패소해 본 적이 없다는 백전백승의 플린 변호사는, 록시 역시 결국은 멍청하고 흔한 범죄자 중 하나일 뿐이며, 자신이 없이는 인기는커녕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들 거라는 사실을 록시에게 상기시키지요. 특히나 저 마지막 대사는 정말 일품입니다. "네가 사형언도를 받으면 너에 대한 기사를 훨씬 더 많이 내 줄 걸. 왠지 알아? 신문이 더 많이 팔릴 테니까."

신문을 읽는 군중은, 날마다 짜고 단 것만 먹다 보니 더욱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 (한마디로 입맛을 다 버린)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신문기자들은 신문을 더 많이 팔 수 있다면, 더 정확하고 객관적인 기사를 내는 일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습니다. 특종을 바라고 뛰어다니지만, 늘 같은 이야기를 하고, 남이 입에 넣어 준 말을 그대로 반복합니다. '시카고'는 그런 언론의 특성을 마리오네트 극을 통해 비유적으로 보여줍니다.


록시와 기자들을 조종하는 꼭두각시 곡예사 빌리 플린

기자들은 pre-choreograph라도 되어 있는 양 빌리의 지휘에 맞추어 춤을 춥니다. 코레오그래피라는 개념에 가장 잘 맞는 우리말을 뽑으라면, '짜고 치는 고스톱'쯤 될 것 같습니다. 록시가 기자회견에서 서슴지 않고 뱉어내는 거짓말도 짜고 치는 고스톱이요, 기자들이 신나서 받아적은 기사 역시 짜고 치는 고스톱입니다. 기자라는 집단의 대표격인 미스 선샤인은 빌리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고, 선샤인 양 자신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제가 본 연출에서는 플린이 미스 선샤인과 flirt하는 장면까지도 언뜻 보였던 것 같습니다. 연출가의 센스라고 생각합니다. '배가 잘 맞는다'는 말은 그럴 때 쓰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찍어낸 신문이 불티나게 팔립니다. 시카고에서는 언론 너머의 세계를 조명하지 않습니다만, 그 신문 뒤에는 눈에 불을 켜고 스캔들과 가십, 새로운 살인사건으로 가득찬 신문을 읽는 군중이 있습니다. 변태적인 현상들에 대해 읽으며 남몰래 쾌감을 얻는 것, 관음증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런 관음증이 어떻게 간접살인으로 이어지는 걸까요. 일차적으로는 사형 언도와 형벌에 대한 호기심을 통해서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던 살인범 중에서는 헝가리에서 이민 온 여성 무용수--곡예사일지도 모르겠습니다--가 있습니다. 그 전까지 시카고에서는 여성 죄수에게 사형을 선고한 일이 없고, 사람들 모두 표면적으로는 그 판례가 깨지지 않기를 기다리는 듯 보입니다만, 맨 위에 인용한 빌리 플린의 대사는 그 이면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킵니다. 판례는, 가난하여 좋은 변호사를 구할 수 없었을 뿐더러 말이 통하지 않아 자기 변호를 할 수 없었던 그 헝가리 곡예사의 사형 집행으로 보기 좋게 깨집니다. 그 사형집행 역시 참으로 풍자적입니다. 뮤지컬 전반에서는 일종의 MC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안내방송처럼 관객에게 소개해 줍니다 (누구누구가 어떠한 춤을 추겠습니다, 하는 식으로요). 그러한 멘트들이 쇼비즈적인 요소를 더욱 강화시켜 줍니다만, 그 엠씨는 사형집행마저도 모종의 스펙타클이자 쇼로 탈바꿈시켜 버립니다.

Mary Sunshine: This is Mary Sunshine, coming to you from the Cooke County Jail, where history
would be made today. Katelin Helinski would become the first woman in the state
of lllinois to be executed. And so ladies and gentlemen...

Announcer: And now, ladies and gentlemen, for your pleasure and your entertainment, we
proudly present Katelin Helinski and her famous Hungarian Disappearing Act.

[Drumroll...]

~ 시카고


'신사숙녀 여러분의 오락과 즐거움을 위해,' 카틀린 헬린스키는 '죽음'이라는 묘기를 선보입니다. 그 신사숙녀 여러분이 비단 언론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지칭한 것이라고 보이지 않습니다. 전국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그 사형 집행의 순간 전율과 희열을 느끼는 시카고 군중이 모두 관음증 환자이며, 죽음을 쇼비즈로 담담히 받아들이고 심지어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살인'--사형을 살인이라고 부를 수 없다면--또는 '죽임'에 공범이 되는 것입니다.


- '곡예'를 선보이는 카틀린 '훈약' 헬린스키[각주:2]



체코 뮤지컬 <잭 더 리퍼>는 이러한 관음증과 살인의 연관관계를 더욱 치밀하게 보여줍니다. 가장 인상깊게 기억나는 장면은, 미치광이 살인마에 대한 호외신문을 구입한 사람들이 신문 뒤에 숨어 추는 군무입니다. 마치 부채춤을 추듯, 얼굴을 가린 신문을 나비의 날개처럼 펄럭이지요.

- 먼로 기자의 선동에 따라 열광하는 엑스터시 상태의 군중[각주:3]

붉은 조명 아래 펄럭이는 신문들은 마치 불나방의 날개, 또는 시체 썩은 냄새를 맡고 모여드는 곤충의 날개처럼 보입니다. 신문 뒤로 숨어버린 군중 속에, '정체성'과 '개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피 냄새를 맡고 모여드는 '떼'에 불과하지요. 뮤지컬 음반을 구입하면 바로 저 장면 전후로 나오는 노래 가사를 볼 수 있습니다. 5번 트랙이고,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끔찍한 살인

경제공황, 인권유린, 전쟁피해, 화재사건
모두가 다 유행지난 이슈일 뿐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해, 이거 들어봐
재미없어 (그렇지)
관심없어 (그렇지)
또 그 사건 신문 덮어

연쇄 살인 흥미로워
피가 튀는 사건현장 끔찍해라 끔찍해라 끔찍해라
살인범은 누구일까 안 잡혔대 이럴 수가

다음 번엔 얼마나 더 끔찍할까 더 끔찍한 사건

~ 잭 더 리퍼

번역이 조금 어설픈 감이 있습니다만, 그 덕분에 쉽게 선동되는 군중의 면모가 더 잘 표현되는 부분도 있는 듯 합니다. 저 노래는 먼로 기자가 앤더슨 경관을 '꼬시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사람들은 살인사건을 좋아하니, 사건 현장마다 자신을 데리고 다녀 주면 자신이 사진을 찍고 자극적인 기사를 써서 번 돈을 앤더슨과 분배해 주겠다는 게 요지입니다. 마지막 줄 쳐 둔 부분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 탄사에 담긴 것은 염려입니까 기대입니까?

살인마 잭은, 그리고 잭의 광기를 이중인격으로 받아들이는 다니엘은 분명 변태입니다. 살인을 할 때 짜릿함을 느끼고, 살해당하는 사람이 성적 쾌락을 파는 매춘부라는 사실에서 그 짜릿함은 섹스와 더 굳게 결부됩니다. 하지만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변태성을 지닌 것은 다름 아닌 군중입니다. 군중은 권태를 쫓아내기 위해 짜릿함을 추구하고, 그 짜릿함의 끝에는 필연적으로 변태 살인마 잭이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타인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의 잔혹성에 대한 이미지를 주기적으로 섭취해야만 한다면, 이는 잭의 살인 성애에 버금가는 살인 중독이요 변태 성욕입니다. 방조 역시 살인에 동조하는 행위라면, 방조에 쾌감이 가미된 것은 일종의 정신적 심리적 지지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론은 그런 모든 관음증 환자에게 좋은 창문과 망원경을 제공합니다. 렌즈를 왜곡하는 일마저도 서슴지 않습니다. 살인마는 누구입니까? 뮤지컬 전반에 걸쳐 잭은 '잔혹한 살인마'라고 불립니다만, 극 전체의 메시지는 보다 복잡합니다. 살인의 죄를 잭과 다니엘이라는 변태적 살인마 개인에게 돌리기에, 언론-군중-살인으로 이어지는 구조 전반이 관음증으로 곪아 터져 있으며, 그 구조에 귀속된 우리 개개인 모두가, 얼마나 고상한 도덕관을 가지고 있든, 살인마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연을 보며 메모를 상세히 해 두지 않아서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만, 대강 생각나는 바를 적어본 것입니다. 미티 작가님의 만화에 대해서는 또 글을 쓸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 현대사회에서의 관음증과 군중심리를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개개의 프로덕션에 대한 코멘트는 이 포스트에서는 다루지 않기로 합니다. 물론 각기 다른 연출가 특유의 취사선택에 의해, 두 뮤지컬에 대한 저의 의견히 상당히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다고 생각됩니다만, 각각의 라인업이나 캐스팅 면을 논하거나 극장의 음향을 논하는 포스팅이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본문으로]
  2. http://www.cosmicplay.net/Kaleid/Chicago/Chicagoart2/hunyakredb.jpg [본문으로]
  3.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324D34551F716C63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