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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배설>/심연

짧은 인삿말

고통스러운 글쓰기에 도전해본다. 고통이 우리의 내부에 존재한다면, 글을 쓰면서 그저 내 안에 있는 고통을 꺼내오면 될 뿐이다. 하지만 고통이 우리의 외부에서 필요할 때마다 방문하는 것이라면 까다로운 주문을 할 수밖에 없다. 지금 나는 오 분 정도밖에 시간이 없지만 여기에 무언가를 쓰고자 한다. 이런 상황이 나에게는 쉽지 않은 요구다. 평소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글을 쓸 때는 특히 멍하게 생각을 하며 많이 지체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라도 고통을 제대로 소환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글자수에 제한이 없는 이상 정말로 고통스러운 글쓰기는 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지내는 방을 곧 떠나야 할 것이다. 운이 좋아서 테라스가 달려있고, 돌 틈으로 민들레 비슷한 풀들이 자라는 모습을 자리에 앉은 채 구경할 수 있는 특권을 얻었지만 시간 제한이 엄격한 승차권이다. 검표원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찻간에서는 누군가에게 차표를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을 것이다. 적당히 부정승차하면서 살아가느니, 검표원을 만나 벌금을 내게 되는 순간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고대하고 있다. 그때가 오면 익숙한 것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훌훌 털고 떠나면서도 못내 아쉬워 앉아 있던 푹 꺼진 자리를 바라볼 것이다. 시간은 없는 사람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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