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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배설>/심연

어떤 이야기(2)

//어떤 이야기(1)과 (2)를 수정하였습니다.


바깥에 나와서 빛이 처음으로 만난 입자는, 외로운 성간물질이었다. 빛은 한 번도 외로워 본 적이 없어서 성간물질이 하는 말을 처음에는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성간물질은 한동안 어떤 별의 일부였다고 했다. 빛의 시간 개념은 상당히 왜곡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 한동안이 의미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으나 성간물질의 상태로 보아 꽤나 긴 것임이 분명했다. 그는 더 이상 무언가를 해 나가기를 포기한 채, 잿빛 표정을 지으며 몹시 외롭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빛이 어떤 이야기를 해도 결국 이야기는 성간물질의 고독함에 대한 주장으로 수렴했다. 그것은 무슨 느낌인가. 너무 멀다는 느낌이다. 무엇으로부터 멀다는 느낌인가. 과거로부터 너무 멀다는 느낌이다. 그건 당연하지 않나. 당연하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가. 더 이상 성간물질이 대답하지 않자, 빛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실로 무의미하다는 것이 어울릴 만한 곳이었다. 차라리 아무 것도 없다면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가 있겠지만, 고독한 성간물질처럼 생긴 것들이 제각기 자리에서 꼼짝도 앉은 채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멀리서 희미하게 무언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려왔다. 가끔씩 소리가 높아졌다가 낮아졌고, 커졌다가 작아졌다. 귀를 기울여서 들으려고 하면 갑자기 잘 들리지 않았고 신경을 끄자니 불규칙한 리듬이 자꾸 주의를 끌었다. 빛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가보았지만 오히려 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아무래도 반대방향으로 온 것 같아 다른 방향으로 가보았더니 소리가 점점 커지고, 또 커져서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었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다시 처음에 갔던 방향으로 갔더니 어두운 것들이 폭포처럼 마구 쏟아져 내리는 구역이 나왔다. 이유는 몰라도 가까울수록 소리가 작아졌지만 분명 이곳에서 나는 것이 틀림없었다.

빛이 가까이 다가가자 소리가 멈췄다. 정말로 소리가 그친 것인지, 너무 가까이 와서 소리가 줄어들어버린 것인지는 몰라도 완전한 침묵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잘 보니 어두운 것들이 폭포처럼 떨어지고 마는 게 아니라, 허공에 걸린 컨베이어벨트처럼 순환하고 있었다. 빛은 말을 걸어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당황해서 뒤로 조금 물러났더니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으므로, 어두운 것들이 내는 소리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소리가 이 구역에서는 뒤집힌 방식으로 퍼져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소리를 내도 튕겨나간 것처럼 멀리 날아가 버리니 소통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침묵이 아니라 상상도 할 수 없이 큰 소음이 자리잡고 있는 셈이었다.

빛이 한 마디도 제대로 못한 채 떠나야겠다고 결심하고 움직이는데, 문득 기억 속에서 어두운 것들이 내는 소리와 유사한 것이 떠올랐다. 울음소리였다. 비록 누구나 알 수 있는 형태는 아니었지만, 빛은 근래에 경험했던 하나의 강렬한 감정이 여기에도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바로 빛이 밖으로 나오기 전에 느꼈던 그리움이었다. 이때야 빛은 어두운 것들이 다름 아닌 눈물이며, 흘러나와서 완전히 해소되기도 전에 다시 흘려지는 반복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이 어두운 것들의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미래로부터 너무 멀어서 울고 있다는 말을 할 것 같았다. 아직 이들에게는 기회가 많이 있으니, 실컷 울다보면 언젠가는 미래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빛은 점점 커지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리움이 지시하는 방향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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