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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면 연애처럼 사라질 아득한

백년의 고독

아프고 따갑고 슬프고 갓 돋아난 새살처럼 괴롭도록 보드라운 것들로부터 한없이 내달려 봐도, 결국은 그 모든 것을 혼자 마주해야 한다. 

정오가 되기도 전에 버번 위스키 반 병을 비우고 까무러쳐 보기도 하고, 성경책을 펴 좋아했던 시편들을 흰 종이에 정성껏 베껴 쓰기도 했다.

 

결국 나는 나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고 마음이 십수 년 만에 편안해졌다.

그리하여, 내 곁에는 흰 당나귀 대신, 내가 먹는 것은 모조리 빼앗아 먹기를 예사로 아는 버릇 나쁜 고양이가 한 마리 있으며, 또한 나타샤 대신 -- 구멍 난 양말을 버리지도 않고 신고 다니는, 남의 고통에 대해 기이하리만큼 무심한, 슈퍼히어로 액션 영화를 즐겨 보는 -- "좋아하다"를 아직도 종종 "촣아하다"라고 쓰는, 내가 다 못 먹고 접시에 남긴 음식을 가져다 먹기를 좋아하는, 새벽에 잠이 깨면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내 엉덩이를 한 번 만져 보고 다시 잠이 드는 -- 수염이 무성한 남자도 하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또, 언젠가, 지금 품은 알량한 행복의 그림자같은 꿈조차 다시 잃어버리는 날이 온다고 해도, 나는 나의 우울에 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시는 내 어린 날의 백석의 초상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