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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C

잡글 -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시도

1.

 

, 혹은 자연.

하나의 실체를 허용하는 스피노자의 주장은 내게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오직 단 하나만이 있고, 우리 모두 그 안에 있다. 만물은 곧 신이며, 단 하나의 실체다. 존재에 피곤함을 느껴왔던 내겐 정말로 반가웠던 주장이었다.

존재한다는 것은 언제나 피곤한 일이다. 그리고 그건 너무나도 무겁다. 그러나 이러한 피곤은 생각해보면, 결국 비-존재가 있기에 성립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언젠가 나의 존재는 끝난다. 점점 이 존재는 끝을 향해가고,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마치 마모되는 톱니바퀴처럼, 그렇기에 나의 수레바퀴도 점점 굴러가고, 천천히 굴러가며, 언젠가 멈출 예정이기에 나에게 한 없이 피곤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단 하나의 실체, 단 하나의 존재만이 있다면, 그리고 그 외엔 아무 것도 없다면, 결국 나는 존재의 피로를 느낄 필요 없이 언제나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언젠가 에티카를 처음 공부할 때 잠깐 했었다. 물론 교수의 강의를 듣고, 토론을 하면서, 정말로 유아적인 생각이자 왜곡된 의견이란 것을 곧 깨달을 수 있었지만, 내겐 아무래도 좋았다.

 

2.

 

라이프니츠의 가능세계 또한 내게 큰 호기심을 준 대상이었는데, 정작 라이프니츠가 신이 창조한 단 하나의 완벽한 세계, 가능성의 바다에서 신이 낚아 올린 현재라는 물고기에 관심을 가졌다면, 나는 신의 머릿속에서만 생각으로서 존재하는 그 수많은 버려진 가능성들에 호기심을 느꼈다.

라이프니츠는 가능성에 대해 엄격한 법칙을 적용한다. 내게 없는 속성을 그것이 가지고 있다면, 그는 나와 동일할 수 없다. 설령 내가 방금 전 물을 마시지 않거나,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혹은 어떤 책을 읽지 않았다면, 과 같은 가정은 무의미하다. 그러한 가능성 속 나는 엄밀히 말하면 모두 나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는 버려진 가능성들은 모두 신의 머릿속에 있을 뿐, 실제로 창조되지 않았기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그는 있는 것에만 주목한다. 그러나 나는 신에게조차 버림받은 그러한 가능성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신조차 창조하지 않은 그러한 버림받은 가능성들은 대체 누가 구원할 수 있을 것인가?

 

3.

 

언젠가는 라이프니츠와 스피노자의 결혼을 시도해본 적 있다. 가상의 대화편으로 두 사람이 만나서 교류하고, 하나의 알려지지 않은 체계를 만들고, 결별하는, 그러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쓰다가 모든 것이 조잡하게 느껴졌고, 내 자신의 역량에 한계를 느껴서 곧 그만두고 말았다.

 

마치 라이프니츠의 신처럼, 나 또한 이런저런 이름들을 가지고, 여러 가능성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적어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의 여러 가능성에 대해서도 간혹 생각해보지만, 정해진 것은 없다. 누군가의 말처럼 연애를 해볼까도 생각해보고, 나를 바꿔볼까도 생각해보고, 실제로 조금씩 노력이야 하고 있지만, 나는 신이 아니므로 미래는 모르고, 미래의 내가 과연 어디까지 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이름들과 버려진 가능성들을 두고, 나는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학문적인 공부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말 그대로 시간을 따분하게 죽이며 무의미하게 있을 만한 그러한 것을 원하는 걸까?

 

나는 조금 더 나를 나눌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 연애를 하려는 나와 가족들 앞에서의 나, 그리고 나라는 나, 이런저런 나들. 나의 가능성들을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가능성들은 나라는 하나의 실체가 된다.

 

4.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는 단 한 번 서로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정확하게는 아직은 젊은 라이프니츠가 악명 높은 스피노자를 찾아간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둘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모른다. 라이프니츠는 마치 그 만남을 부정하듯,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스피노자도 별다른 말을 한 적이 없다. 이 알 수 없을 두 거장의 만남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할 뿐이다.

 

내가 만들고자 했던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만남에 관한 가상의 대화편은 다음과 같이 파국을 맞이하며 끝을 맞이하려고 했었다:

 

 

기나긴 토론을 나누던 라이프니츠와 스피노자는 마침내 서로의 체계가 하나로 합쳐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은 마치 천국과 지옥을 강제로 결혼시키려는 것과 같은 불완전한 시도였고, 오직 광인만이 할 수 있는 그러한 시도였다. 공교롭게도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 두 사람 모두 광인의 범주에 속하는 자들이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체계가 광인이 아닌 자들을 위해서 쓰이기를 원했고, 따라서 두 사람의 결별은 필연적이다. 두 체계는 합쳐질 수 없던 것이다.

 

 

라이프니츠: 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생각은 분명 잘못되었고, 너무나도 위험합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선생님을 찾아온 저 자신의 철없는 행동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스피노자: 하지만 자네와 나의 만남 또한 최상의 것을 향한 일부이지 않겠나?

 

 

라이프니츠: 그리고 선생님을 떠나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 것으로 그 가능성은 완성되겠죠.

 

 

(라이프니츠, 퇴장)

 

어떻게 되든, 무엇이 있든 쓸데없는 고민일지도 모른다. 결국은 모두 퇴장할 뿐이다. 엑시트로 읽든, 이그시트로 읽든, 무대가 막을 내리고 나면, 더 이상 육신이 없는 등장인물들은 사라지고, 배역들은 하나둘 무대를 떠나 삶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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