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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연애 이야기/짝사랑에 실패하는 n가지 방법

이 모든 것이 또한 실패한다 해도 이 모든 것이 또한 실패한다 해도 이전에, "만일 이 모든 것이 실패한다 해도, 내게는 공립도서관이 있다"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사람도 동물과 같아서 이상적인 서식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나라가 될 수도 있고, 도시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직장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어느 장소에 가든 생활방식이 크게 변하지 않고, 도시와 금방 사랑에 빠지는 편이기 때문에 나는 나에게는 서식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요즘 느끼는 것은 내 서식지라는 게 이 생활방식 자체라는 사실이다. 좋은 도서관이 있고, 글을 쓸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유년기로부터 지금까지 지속되어 오는 내 서식지이고, 그것이 없어진다 했을 때에 내가 멸종하지 않을 거란 자신이 없다. .. 더보기
타고르와 셸리와 형이상학 오늘 모 선배가, 우리는 왜 사귀게 되었냐고 해서, 그 답을 집에 오는 길에 곱씹어 보다가 몇 자 적습니다. (사랑하지 않아도 연애쯤 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일단 그런 질문을 들으면 나는 왜 당신을 사랑하는가에 대한 것부터 고민을 하게 됩니다. 사실 그 질문에 대해서는, 당신과 나도 답을 모릅니다. 답이 없는 질문에 대하여는 임의의 답이 정답이 되겠지요. 고대 사회의 신화만 보더라도 가장 신빙성 있는 '구라'가 모든 것을 설명해 내지 않던가요. 그래서 내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모든 양상의 본질인 우연이라고 하는 물리법칙과 그 통속성에서 그나마 건져낼 만한 것이 -- 그 자신은 우연의 산물이라 해도, 보는 이로 하여금 필연을 믿게 할 만큼 사랑스러운 것이 -- 나와 당신의 실존이 시공간.. 더보기
(쓰는 중) 액트 오브 킬링 액트 오브 킬링 (2014) The Act of Killing 9감독조슈아 오펜하이머출연안와르 콩고, 헤르만 코토, 시암술 아리핀, 하지 아니프, 사크햔 아스마라정보다큐멘터리 | 덴마크, 노르웨이, 영국, 스웨덴, 핀란드 | 159 분 | 2014-11-20 모 선배의 요청으로 작성하는 해설 및 리뷰입니다.사실 제가 영화평론 전공도 아니고, 모국어로는 학술적 글쓰기를 해본 경험이 없어 (본문은, 하고 시작하는 류의 것이요) 썩 유려한 문장은 쓰지 못할 듯 합니다만, 영화를 보고는 그러지 않아도 비망록 겸하여 몇 줄 적어야겠다 생각하던 차라 간단히 적습니다.일단 줄거리를 요약해야겠습니다만, 그 문제야 역시 제작자들 본인의 설명이 가장 간결하지 않겠습니까. In THE ACT OF KILLING, direc.. 더보기
앞치마에 대하여 (생각들 하시는 그 앞치마가 맞습니다.) 앞치마에 대하여나는 앞치마를 좋아한다. 내가 그걸 입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고, 오히려 반대 경우를 좋아한다. 앞치마를 입은 몸매가 가장 완만한 곡선만으로 이루어졌다 해도 좋다. 앞치마는 가능하면 흰색보다는 색깔 있는 무지 천으로 된 것이었으면 좋겠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고등학교 때 읽은 권지예의 단편 때문이다.그때 밖에서 남자의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도마질 소리도 들려왔다. 제법 익숙한 솜씨로 리드미컬하게 오이 같은 걸 써는 경쾌한 소리다. 여자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남자는 알몸에 초록색 에이프런울 두른 뒷모습으로 싱크대 앞에 서 있다. 무언가에 굉장히 몰두하고 있다. 올라간 그의 어깨 근육과 질끈 묶은 에이프런 끈 밑에 드러난 알궁둥이가 .. 더보기
무의미의 -- 소네트 식 불균형의 산문 가끔 맞춤법을 지켜 적기조차 버겁도록 모든 것의 인과관계와 당위성이 보이지 않는 날이 있다. 가끔이라 하기에도 스스로 좀 쑥스러운 것은 그 가끔이라 하는 것이 사실 매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이렇게 밝혀 쓰기에도 사실은 좀 쑥스러운 것은 부조리란 다름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포스트콜로니얼을 논하며 셰익스피어를 읽는 내가 한심스러우나, 또 한편 요즈음 잘 나간다는 '우리말' -- 그 우리말이란 것도 과연 누구의 말인가 -- 그래서 나는 시나 소설에서 방언이 그럴듯하게 구현된 것을 퍽 좋아한다 -- 장편 한두 권을 서점에서 넘겨 보며 예술성이란 절대적인 것인지 나의 뇌란 것이 제국주의의 美感에 찌들어 버린 것인지를 고민한다. 이렇게 글을 쓰는 지금도 문장에 한자가 태반인 것을 보면 결.. 더보기
검은 두루마기와 글 검은 두루마기와 글 엊그제 모 모임에서 나눈 대화 중, 제일 부럽다 여겨지는 사람이 누구냐 묻기에 나는 생각 없는 사람이 부럽다 하였는데, 아닌 것이 아니라 요즘 생각이 없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나일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네 생각만 하기에도 일생이 부족할 것 같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차 정신을 차리고는 할 일을 한동안 하고, 쉬고 싶을 때는 다시 입 안에 알사탕 하나 문 것을 하염없이 혀로 쓰다듬고 굴려 보듯이 머릿속으로 너와 네 목소리를 팽이처럼 돌려 본다. 좀 있다 다시 자기소개서를 쓰러 갈 적에는 -- 나 자신을 어떻게든 광고해서 어느 대학에라도 팔아야 할 것인데 그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 그 팽이를 다시 주워 호주머니에 넣을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오늘 생리통으로 종일 .. 더보기
대화 요는, 연애하시라고요 여러분. 이러다 또 잘 안 되면 다 부질 없다는 요지로 또 글을 쓰겠지만. 만약에. 응. 만약에 오늘 같이 자면 내일도 내가 좋을까? 응. 그러다가 질리면. 그럼 같이 할 수 있는 좋은 걸 또 찾으면 되지. 우리나라에서 이상하게 성적인 걸 맨 마지막 단계인 양 포장해서 그렇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게 그렇게 단편적인 문제는 아냐. 생물학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인데? 그래도. 오늘 자도 내일도 좋고 내일 자도 모레도 좋을 거야. 그러다 질려도 좋아하지 않게 되는 건 아니니까. 그럴 만큼 좋은가 보네, 내가. 그렇게 안 좋았으면 뭐 하러 그 맘 고생을 하면서 잡아 왔겠냐? … 어차피 내가 보기엔, 네가 질려서 내가 떠날 확률보다도 네가 나를 뻥 차고 떠날 가능성이 몇 배는 높거든. .. 더보기
너와 나의 바벨 -- 블레이크의 신화에 비추어 제니퍼 슈츠는 "So Nakedly Dressed"에서, 여성의 몸을 묘사를 통해 재구성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슈츠는 롤랑 바르트의 S/Z를 이론적 기반 삼아 나보코프의 와 두 소설을 논하는데, 묘사를 하려면 무언가를 끊임없이 나열해야 하는 언어의 특성상, 묘사의 대상이 되는 어떤 신체는 조각나게 될 수밖에 없다. 독자에게, 그 아름다운 신체를 온전히 제시하기 위해, 묘사자는 점점 더 많은 것을 나열할 수밖에 없게 되고, 열거되는 목록이 길어질수록 신체의 파편화는 심화된다. 종내, 그 신체에 대응하는 어떤 개인 -- 아다, 그리고 롤리타 -- 은 그 묘사로부터 점점 유리되며, 묘사를 통해 애인을 소유하고자 했던 서술자는 종내 한 무더기의 조각난 신체와 함께 홀로 남겨진다. 다시 말해, 너의 침은 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