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 <배설>/작희

#7 눈썹이 이상해졌다

원고번호 2
작희


눈썹이 이상해졌다


올 여름, 학원에서 조교로 일을 하며 자습이나 시험 감독을 하는 일이 잦았다. 고개를 숙인 학생들의 이마를 나는 내려다보았고, 나를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통유리창으로 햇빛이 비치면 여자아이들의 이마에, 솜털이 머리칼로 촘촘히 이어지는 것이 보여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정리되지 않은 눈썹이 돋은 미간과 눈꺼풀이 낯설었다.

간만에 자세히 본 열 살 여동생의 눈꺼풀에도 솜털과 눈썹이 보송했다.


좀 비었다 싶어도 채워넣지 않고, 무성하다 싶어도 뽑지 않는 것이 젊음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은 10대 초반부터 소녀들이 눈썹을 원하는 모양으로 다듬는 것 같다. 세미나에 들어가면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눈매며 화장을 꼼꼼하게 살피며,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덧바름일까를 생각해 본다.

거장과 마르가리타에서, 아자젤로의 마법 크림을 바른 마르가리타의 얼굴에 제일 먼저 나타나는 변화는, 꼼꼼하게 정리하고 뽑은 눈썹이 다시 무성한 젊은 눈썹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나는 눈썹 숱이 많다.

이곳에 처음 와서는 눈썹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아는 분 말씀이, 여자는 남자가 생기면 눈썹 정리를 시작하는 법이라 했는데, 그것과 관련이 아마도 없겠지만 작년 즈음 눈썹 정리를 시작했다. 워낙 빈 곳이 없는 반달이라 채워 그리기는커녕 뽑아야 했다.

아직도 일주일을 바삐 살면 눈썹 뽑은 자리에 새 눈썹이 고개를 든다. 


눈썹 모양은 엄마 것과 꼭 같아서, 눈썹을 뽑아 모양이 바뀐 것을 본 엄마는 조금 섭섭해하는 것 같았다.

얼굴에서 엄마를 닮은 구석이 별로 없어서 그것마저도 잃어버린 것이 아쉬운 것인지, 무엇이 됐든 조금 죄송한 마음이 들어 한동안은 원래 모양대로 정리를 해보고자 무진 애를 썼다.

원래 모양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원래 모양이라는 것이, 아마 그 뽑고 밀지 않은 작고 가맛한 솜털 하나까지도 모여서 생겨나는 것일 테니, 일단 정리한 눈썹이 원래 모양대로 돋을 리가 만무할 테다.


나이가 조금 더 들면 머리숱도 눈썹 숱도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럼 나는 아마도 눈썹 그리는 펜슬을 하나 살 것이다.

눈썹이 그려 놓은 듯 예쁘다고 한평생을 자랑하던 엄마의 화장품 상자에도, 올 여름 들추어보니 못 보던 눈썹 펜슬이 하나 있다.

얼마 전부터 그리기로 해서, 하나 샀다고, 무슨 색인지도 모르고 그냥 대충 맞춰 그리고 빗고 나간다 한다.

엄마는 머리숱이 많았던 적이 없다. 나는 머리숱이 많은데, 그래도 나이가 들면 눈썹을 그리게 되는 걸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엄마는 눈썹을 밀었던 적이 있다.

미용실에 가서, 눈썹 정리를 해 준다기에 조금 다듬는 것이겠거니 하고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눈썹을 싹 밀고 다시 그려 놓았다 한다.

너무 이상해, 너무 이상해, 연거푸 말하던 것이 기억이 난다.

이별을 하고 임을 잊으려 할 때 한쪽 눈썹을 미는 내용의 시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자리에 다시 반달이 돋아날 때에는 너를 잊을 수 있겠다 다짐하였던 것이란다. 시를 쓴 것을 보니 반달이 아니라 보름달로 눈썹이 돋아난다 해도 못 잊을 사람은 못 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 자리에 다시 돋은 엄마의 눈썹도 원래대로의 모양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 엄마를 꼭 닮았다는 내 눈썹은 아마 원형이 없는 셈이다.

그래도 어느 날은 눈썹을 뽑지 않고 길러, 어떤 모양으로 자라는지 보고 싶다.

아마 이 다음, 잘 보여야만 할 남자도 없고 눈썹을 비교해볼 엄마도 더 이상 없을 어느 때엔가 눈썹을 기르게 될 것 같다. 나이든 몸에선 털이 제멋대로 나는 것 같으니, 아마 내 눈썹도 그 때는 제멋대로 돋을 것이다. 그 또한 원형이 아닐 것이다.

어디 동창회에라도 가야 하는 날에나 제멋대로 자라난 눈썹을 아마 손질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이 듦이란 어린 시절로의 회귀이지만, 이상해진 눈썹은 아마도 햇살을 가닥가닥 받아쳐내던 내 학생들의 이마 위의 그것으로는 아마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내 미간은 더 이상 솜털도 눈썹도 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