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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

온도적정 북쪽 하늘을 면한 작은 방, 옥탑은 아니되 가장 모서리의 방, 그러니까 가장 날카로운 방. 하늘을 찢고 들어가는 방에서 5년이 지났다. 그 중 3년은 방에서 살지 않았으니 아직 낯설다. 여전히 방에서는 잠만 잔다. 날이 가도 밤은 항상 추웠고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독일어에서 말하는 'Es zieht'(직역하면 It pulls)가 바로 이렇게 외풍이 들어오는 상황이다. 누가 무엇을 당기고 있길래 바람은 쉴새 없이 스며드는가. 와류는 구석에 몰린 채 언제든 벗어날 기회만을 노렸다. 겨울바다를 꿈꾸는 것들이 허공에서 헤엄치다가 따뜻한 곳에 끌려 옹기종기 모였다. 공중을 헤엄치는 상상, 아주 오래된 류의 상상이지만 해본지도 오래된 상상이다. 공기는 충분한 부력을 제공하지 못하고 중력의 눈은 매섭다. 어찌하여 .. 더보기
우리를 기억하는 건 우리겠니 우리를 기억하는 건 우리겠니 우리, 를 생각하기가 어렵다. 너와 내가 만나면 우리가 된다고는 하지만, 1인칭 복수라는 것은 애매한 이야기다. 감히 우리를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갑자기 쏟아지는 눈보라 때문에 너는 C의 집에서 주말을 보낸다. 거의 비어 갈 고양이의 물 그릇이 눈에 밟히지만 C가 끓이는 양파 수프 냄새도, 침대도 거역할 수 없이 따뜻한 탓에 너는 네 자신이 고양이인 양 C의 방과 주방을 오가며 -- 이따끔 기지개를 켜고, 20분 정도 낮잠을 자기도 하고, C가 만들어 놓은 음식들을 한두 점씩 집어 먹고, C의 룸메이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 주말 내내 노닌다. - 나 주말 내내 이렇게 있어도 괜찮아? - 네가 좋고, 주말을 너랑 보내는 것도 좋아. - 그럼 다행이야. 우리는 이렇다,.. 더보기
금연애를 해본다면 금연애를 해본다면 슈퍼볼 중계를 아메리칸 뽀-이 일곱 명과 함께 보았다. 다가오는 발표 때문인지 C는 다소 압력을 받고 있는 눈치다. 토요일 밤 그 압력을 온몸으로 다 받아낸 너는 화장을 지울 기운도 없어 C의 겨드랑이에 머리를 묻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느릿느릿 둘 다 눈을 떴을 때는 -- "Morning, handsome." "Morning." "What time is it?" "Eleven." "What?!" "Yeah, I thought it'd be, like, nine." "How'd this happen?" -- 해가 이미 중천이다. 피로 때문인지 전날 먹은 짠 음식 때문인지 눈꺼풀이 잔뜩 부어 있는데, 쌍꺼풀이라는 개념조차 잘 모르는 C는 아마 -- "너 오늘따라 되게 예쁜데 왠지는 모르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