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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배설>/심연

털이 이상해졌다

Jackie gewidmet.


한때 나는 털을 위해 싸우는 이들의 편이었다. 그것만큼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고 이 점만큼은 자랑스럽다. 그동안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이전의 사람들은 상상하지도 못한 시기였지만, 우려하던 일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신화가 하나 깨져 나갔다. 두발규제의 신화가.


머리카락은 깎이기 위해 존재했다. 수많은 비논리가 이 명제를 끊임없이 다시 증명했다. 그리고 우리들은 온몸으로 반론해야 했다. 도덕을 가르치는 젊은 여선생이 말했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여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살짝 긴 느낌 드는 남자 머리 정도로 잘라야 했다. 그 외에 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자신의 경험을 타인에게 강제로 전달하기 위한 변론에 불과했다. 체조선수 출신이었다던 체육선생이 들어와서 머리를 움켜쥐었다. 손가락 밖으로 삐져나오는 이에게는 경고가 주어졌다. 두발규제는 어디까지나 억압이었지 징벌은 아니었다. 그저 다음날까지 머리를 다시 깎고 돌아와 검사를 맡으면 자유를 찾을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학교는 학생들을 길들이는 손쉬운 방법을 사용했다.


나는 머리카락을 기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머리카락을 강제로 깎는다는 아이디어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고나서의 일이었다. 지금 보면 조악할 수도 있지만 청소년 활동가들이 만들어낸 논리를 공부했다. 골방에 틀어박혀 불온서적을 읽듯이 머릿속으로 수많은 반론을 연습했다. 물론 모범생이었던 내가 그 반론을 펼칠 기회는 없었다. 어디선가에서 수많은 하얀 종이비행기가 날아가는 시위가 있었다고 했다. 어디선가에서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몰려나와 농성했다고 했다. 학교의 교정 위 하늘을 종이비행기가 가득 메우는 상상을 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고등학생이 되었고, 체벌조차 없었던 학교에서 나는 더욱 체제에 안주했다. 이곳의 두발규제는 규제같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인중에 털이 거뭇거뭇해지기 시작했지만 나는 아직 어렸다. 그렇게 어린 상태로 철없는 연애를 시작했고 벼락맞은 것처럼 끝이 나자 나는 면도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고등학교 생활의 절반이 지나 있었다.


면도를 한다는 것은 이틀에 한 번씩 이루어지던 중요한 의례였다. 면도거품을 잔뜩 내어 입가에 펴바른 뒤 삼중 혹은 사중의 면도날로 휙 그으면 하얀 거품이 사라지면서 털도 함께 사라졌다. 어느새 나는 매일 면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고, 범위도 입가에서 턱선을 따라 귀 앞 구레나룻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자 또 다른 연애를 시작했고, 애프터셰이브를 발라서 나는 향이 어떻냐는 질문을 했었다. 싫지 않다는 답변을 들었지만 나 스스로도 너무 독한 향이라 도저히 계속 바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청소년기는 끝이 났다. 청소년 운동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 여성은 죽을 때까지 여성, 장애인은 죽을 때까지 장애인이지만 청소년과 군인은 머물러가는 신분에 불과하므로 어느새 남 이야기가 될 때까지 참고 견디면 될 뿐이다. 경기도를 필두로 서울시에도 학생인권조례가 생겼고 사람들은 교권의 추락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두발 자유화가 되면 생길거라던 거대한 혼란은 어디에도 있지 않았다. 이것에 대해 아무도 따지지 않았지만 학생들도 교사들도 적당히 만족한 상태로 넘어갔다.


학교 대신 사회가 나를 억압하기 시작했다. 코털은 나에게 아무런 불편도 주지 못했지만 미관상의 이유로 잘라야 했다. 수염을 기른다고 남들을 찌르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수염을 기른 나에게 모두들 한마디씩 했다. 코털이 자란 나는 그 이전의 나와 동일한가? 그렇다. 코털의, 나의 일부로서 정해진 기능은 자라는 것이고 그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했으므로 나의 후기적인 모습일 뿐 나는 나다. 하지만 이 사회는 나의 코털을 제거하는 것을 꿈꾸었다. 독일에 왔을 때 내 코털은 이미 코 밖으로 벗어나 있었고 괜히 동양인들은 더럽다는 오리엔탈리즘적 편견을 막기 위해 코털을 자르고 싶었다.


이때 코털가위를 구할 수 없었지만, 무려 한국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독일로 코털가위가 건너 왔다. 마일리지를 쌓는다면 제주도 왕복 티켓을 얻을 만 했겠지. 선명한 미국의 문자들이 찍힌 봉투를 보다가 나는 실소했다. 세관에 신고할 때 이것은 눈썹 집게라는 허명을 얻었던 것이다. 내 털을 위해서 거짓 이름까지 뒤집어 쓴 채 먼 길을 날아 왔구나. 다행히도 독일 세관 검사로부터는 면제된 채. 정갈한 글씨로 적힌 내 이름과 주소를 보면서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온 코털가위의 운명을 생각했다. 이때 나는 조금 변했다. 코털을 자르는 건 더 이상 사회와의 타협이 아닌 나의 주어진 일이다. 그리고 내 코털은 태평양과 대서양의 공기보다 자유로운 존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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