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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배설>/에이넉스

불한당 - 불한당가 리뷰

불한당 - 불한당가 리뷰



(2013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힙합 싱글 부분 노미네이트를 축하하며) 



['한국'힙합 vs 한국'힙합']

지난 20여년간 한국힙합씬의 발전을 이끌어냈던 사조는 크게 두개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한국적인 무언가를 찾아내서 힙합에 적용하자는 사조이다. 다른 하나는 힙합은 결국 힙합이고, 결국 한국힙합은 미국 본토의 힙합보다는 현재 열위에 놓인 상태이기에 최대한 발전된 형태의 '본토힙합'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조이다. 즉, 한쪽은 '한국힙합'에서 '한국'을 강조한 것이고, 다른 한쪽은 '힙합'을 강조한 셈이다. 전자의 대표주자가 '가리온'이라고 한다면, 후자의 대표주자는 현재로서는 Swings와 E-sens를 뽑을 수 있다. 
이 두 사조는 지난 시간동안 서로의 지속적인 충돌과 합일의 변증법적인 과정 속에서 각기 성장해왔고, 또 한국힙합씬 전체를 성장시켰다. 한국힙합에서 '한국'적인 무언가를 넣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들로 인해서 한국힙합은 일본힙합과 다르게 자신의 언어로 라임의 제약 없이 랩가사를 쓸 수 있게 되었다. '힙합'적인 무언가를 더욱 추구했던 이들은 힙합의 전투적이고 실력중심적인 태도를 통해서 한국힙합의 기술적이고 질적인 향상을 끌어내었다. 특히나 두번째 사조는 2008년 발매된 Verbal Jint의 '누명'과 함께 시작한 새로운 era에서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조는 E-sens, Swings, Beenzino, G-Dragon, The Quitt 등의 약진으로 아직까지 그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전자의, 한국적인 무언가와 힙합의 것을 서로 결합하겠다는 시도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가리온' 이 있고, 지난 2012년에는 '불한당' 크루 결성을 통해서 나름 그 지향점과 세력이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그 '불한당' 크루가 2013년에 발매한 컴필앨범 [절충 3 : 불한당들의 진입과 전투 Part.1]과 그 앨범의 타이틀곡인 '불한당가'의 의의는 이런 한국힙합의 발전사적인 측면에서 시작한다. 

[상일층 용사인 각인!]

이 노래의 후렴구를 대체하고 있는 판소리 가락의 '상일층 용사인 각인'은 적벽가의 일부로 '위 1층의 네 사람'이란 뜻이다. 이는 곧 이 트랙에 참여한 네 명 - 넉없샨, 나찰, P-Type, 그리고 MC Meta'를 의미한다. 그것도 그냥 네 사람이 아니라, '위 1층'에 있는 네명이다. 본래 가락에서 어떤 의미로 상일층이 사용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것을 힙합 비트 위로 끌고온다면 그 뜻은 명확해진다. 한 단계 위의 존재 넷 - 이 여덟글자만으로 이 노래는 고전의 멋과 동시에 힙합 특유의 Swag의 미학을 동시에 살려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트랙은 '드럼' 소리 대신에 '북'소리를 샘플링하여 리듬을 만들어냈다. 박력이 넘치는 이 북소리와 박자와 박자 사이에 들리는 고수의 추임새는 '고전과 무협의 멋'이 현대적인 박자 위에서 어떤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킵루츠의 영리함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가장 이질적인 분위기의 랩을 하는 P-type의 verse부분에서는 대담하게도 건반 소리가 나와 비장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건반 소리와 북소리와 일렉기타 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면서 분위기가 쭉 고조된 뒤에 끝나는 이 구성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불허 대경소괴허라] 

'불허 대경소괴허라' 는 '놀라지들 말라'는 뜻이다. 그러나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으랴. 한국힙합 원로격 넷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서 랩을 한다는 그 사실 자체에 더하여, 국악샘플을 이용한 파격성과(국악샘플을 이용한 트랙들은 전에도 몇몇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국악샘플을 이렇게 전면적으로 사용했던 트랙은 거의 없었다) 네 MC들의 유명세를 감안하고도 엄청난 완성도의 verse들이, 일관된 컨셉과 짜임새 있는 구성 위에서 연주되는 이 노래를 듣고. 

[불한당과 불한당가]

이렇게 출범한 불한당 크루의 미래가 어떻게 될런지에 대해서는 결코 알 수 없다. 한때는 루키였던 이들을 어느새 퇴물로 만들고, 거장에게도 어느 한순간 거품론을 들이대는 것이 이 씬이다. 그것이 씬의 잘못은 아니다. 그만큼 이 씬의 변화와 한국 힙합 음악 그 자체의 발전이 빠르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이젠 한국 힙합에서 그 누구도 - 그것이 설령 가리온이나 피타입 같은 존재들이라 할지라도 - 발전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 곡 하나만큼은 하나의 경지, 즉 그 시대가 산출해낼 수 있는 작품 중 가장 최고의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은 논쟁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이 작품이 국악과 힙합의 크로스오버 작품의 정석으로서 무수히 많은 음악가들에게 레퍼런스가 될 것임을 의미한다. 가리온의 2005년 작품 [무투]가 그러하였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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