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한 사람의 인격 내지 능력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존엄의 위치가 존재한다.
존경받고 예우받으며, 여러 사람이 결정할 수 없는 문제를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일반적인 통념에서, 인간이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예우'라는 것을 생각해본다.
예우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공간 내지는 세계, 또는 그 사람의 일부를 내어주면서 시작된다.
굳이 이런 복잡한 방식을 취해야만 내가 내 옆 사람을 '예우'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지,
내 입장에선 의문 부호를 매기고 싶지만 이 이야기를 여기에 풀어놓기에는 글도 생각도 너무 난잡해질 듯 싶다.
'최고의 예우'라는 이름을 붙인 존엄과 존경은 언제나 누군가의 희생을 더더욱 많이 수반한다.
한 개인의 존중과 존경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이를테면 국가 원수에게의 예우를 표할 때
한껏 멋을 부린 일체의 사람들은 누구를 위해 그들의 하늘로부터 받은 권리인 자유의 일부를 구속당하고 있는지,
비장미와 엄숙함, 화사한 감정선과 일체의 화려함으로 포장한 일련의 행사들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 종교들에서도 '종' 이라는 개념을 상시로 비유에 이용하는 걸 보면
그 어느 '이상'에도 인간들이, 혹은 그것을 이루고 있는 한 부분인 인격이 서로 동등하게 서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존엄이 훼손되지 않고 누군가를 공경하는 것은 오늘날 사람 사이의 관계를 정립하는 아주 사소한 부분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하게도 당연하다.
내가 당신이 아니고, 당신이 내가 아닌 이상.
조금 더 가깝게는 당신이 나에 대해 잘 모르고, 내가 당신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에서
오해 없이 내가 당신에 대해 신경쓰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당신을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해 줄 마음이 있음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모를 의심의 끈이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소 실망스럽게도, 이 일련의 과정에서 당신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이성'이라 믿는 당신의 무언가는 아마도 '본능' 또는 '감성'에 좌우되는 아주 얄팍한 무언가임에 틀림없다.
복잡하고 지켜야 할 격식도 의례도 많은 인류의 어떤 행사들이
그 의미만 뚝 떼어놓고 놓고 봐서 동물들의 사소한 교감과 교접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별로 특별한 것 같지 않은 사소한 의전과 의례에 인류가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을 만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소위 자연의 법칙이라 부르는, 강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의 표출, 강자가 된 후로 다툼과 분쟁을 줄이기 위한 과시를 하는,
감성과 본능의 영역이 사회 전역에, 그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곳까지 다분히 넓게 적용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닐까.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려고 한다.
처음에 꺼내지 않은 이야기지만, 내 모든 이야기들은 지금까지
'초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전제를 깔고 이어져 왔다.
몇 줌 되지 않는 독소, 자연에 있어서는 정말 사소하다고도 못할 작은 힘으로도 순환이 깨져 영원히 재기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작은 고문과 충격에도 당신의 인격은 본래의 모습을 영영 잃을 수 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인간들이 비효율적으로 서로를 솎아내기는 하지만
인생의 고난과 아픔을 현명하게 이겨내는 소수의 진정 강한 사람들이
실제로 인간들 사이에서 가장 강한 인간으로 공경을 받는지, 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스럽다.
그렇기에 일개의 의례로서는 사소한 일들이 사회적으로 의미하는 것들이 나는 생각보다 크다고 본다.
사회의 고위층들을 위해 치러지는 수많은 행사들이 사실,
당신, 또는 그 아닌 누군가가 사회의 정점에서 당신의 본디 능력보다 '항상 큰'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가능성을
언제나 열어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타인을 깔아뭉개고 싶은 사람에게는, 언제나 문은 열려 있고
깔아뭉개지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삶의 무게보다 무거운 '동기'가 언제나 주어진다.
그 밸런스가 무너지는 순간이 바로 혁명의 순간이겠지만,
여기서는 거기까지 멀리 서술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큰 바다에서 표류하는 무언가처럼 이야기를 추적추적 멀리까지 이끌어 온 것은
자기소개를 하기 위함이다.
앞서 말한 바 있다.
이 세상에는 개인의 인품과 능력만으로 도달할 수 없는 '존엄'의 위치가 있다고.
그렇다면 그 위치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사람들을 깔아뭉개는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가 자기 밑으로 깔아누르고 싶은 사람들의 1순위는 바로 '힘'이 있는 사람,
정말 사람들이 가장 빠르게, 가깝게 손을 뻗을 수 있는 물리적인 힘이 있는 사람들.
내 관점에서는 '군인' 이다.
명예도 동기도 없이 '의무'로 군생활을 하게 되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지만,
깔아뭉개지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밑에서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사실은 그 인식이 그네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바로 그 사람들의 집단 속에서
아직 1년이 남은 채로 위의 생각들을 두서없이 하며 표류하는,
안녕하십니까,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