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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배설>/에이넉스

#2. 이별에 대처하는 E-sens의 자세

 Jhaloff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최악의, 악랄한, 잔인한 편집장이다. 이는 내가 알고 있는 편집장이 잘롶 하나 뿐이기도 하지만, 그의 본성 자체가 새디즘적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번 주제를 왜 '이별'로 정했는지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는 런던에서조차 안암에 있는 나를 원격으로 괴롭히기로 작정한 것이 분명하다. 글로 써내려가는 나의 울부짖음을, 이태원 한복판에서 외쳤던 '아미캄 아미캄 라마 사박다니-!!'를 다시 듣고 싶어 할 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번 주제에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면 그것은 잘롶에게 굴복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나의 글을 쓰고, 나의 길을 갈 것이다. 그러니 잘롶은 영국요리나 먹으면서 고통받으라. 




 이별에 대처하는 E-sens의 자세


 이번 포스팅의 주인공은 이센스입니다. 최근 아메바 컬쳐와의 화끈한 이별 신고식으로 화제를 모았죠. Control 대란 얘기하는 겁니다. 그때는 어디에도 엮이기 싫어서 아무 글도 안올렸는데, 지금 와서는 후회가 되네요. 좀 핫한걸 올려야 닝겐들이 몰려들어서 투데이도 올려주고 댓글도 달텐데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다듀와 이센스 모두 팬이라서 어느 편을 들고싶지는 않습니다. 사실, 저는 디스전과 상관 없이 아직까지도 양쪽 모두의 팬입니다. 그래서 기념으로 올리는 이센스 노래들. 제목은 이별에 대처하는 이센스의 자세. 

 

1. Leavin'




'예민한 관계 유리같은 경계선

고민하는 순간 이미 변해있어' 



(그가 변했다고 말하면 지능이 떨어지는)Verbal Jint의 (남들이 변했다고 말하기 전인) 2집 앨범 '누명' 수록곡입니다. 죄수복을 입은 Verbal Jint의 모습이 잘 어울리는 노래입니다. 악기의 사용이 상당히 절제되고 차가운 느낌을 주죠. 

 이 비트에 랩을 한 세 래퍼의 콜라보레이션도 상당히 독특합니다. 이센스와 VJ, 그리고 MC meta는 각각 다른 세대의 사람들일 뿐더러, 그들이 추구하는 랩의 형태나 라임형식 역시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메타의 경우 랩을 상당히 고전적으로 하죠. 가사는 99% 한국어, 라이밍 역시 대부분 한국어로 합니다. 조금 딱딱하다고 느낄 수도 있으실 겁니다. 사실 메타 랩의 매력이기도 하죠. VJ의 경우, 세련되고 유려하면서도 라임이 있어야할 자리에는 꼬박꼬박 자연스러운 다음절 라임을 박아서 율동감을 살려줍니다. 그게 VJ랩의 맛입니다. 다음 줄에서는 어떻게 자연스럽고 맛깔나게 라임을 만들어낼까 하는. 

 이센스는 대한민국 모든 래퍼들 중에서 '3세대 랩'이란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MC입니다.(물론 대한민국 힙합 세대구분에 대한 academic/undisputable한 규정은 아직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자유로운 형태의 랩을 구사하는 MC죠. 라임이 없는 듯 하면서 분명히 존재하고, 그 나름의 아주 독특한 리듬을 구성하게 됩니다. 

 이 곡을 제일 먼저 뽑은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이센스의 가사 때문입니다. 남녀관계만큼 변화 무쌍한 건 환율밖에 없지 않을까 합니다. 오전에 좋았던 커플이 오후에는 서로를 향해 온갖 저주를 퍼붓고, 오늘 낮까지는 말 한마디 안하던 둘이 밤을 같이 보내기도 하니깐요. 그런 와중에도 '과연 이건 누구 잘못인가'를 생각하게 되는거죠. 씁쓸한 그 휴전시간에는 담배만 평소보다 더 피게 될 뿐이죠. 그러면 이제 '내가 예전에도 이랬었던가' 하는 생각을 하고. 이 연애에서 내가 알고 있던 내가 어딘가 침식된것만 같고. 그렇기에 떠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죠.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으니. 



2. L.B.A.




'언제든 난 이별 앞에서 초연할 거라 믿었거든

근데 이게 뭐야'



 다이나믹듀오 + 슈프림팀 프로젝트 앨범 'ballad for fallen soul'입니다. 이센스는 슈프림팀이 다듀 군대 땜빵이었다고 말했지만, 땜빵 치고는 케어를 많이 해줬어요. 앨범도 하나 내주고 말입니다. 앨범 컨셉이 컨셉인 만큼 이센스의 랩도 조금은 더 대중적인 모습입니다.  

 이 노래는... 갓연우의 피처링이 원곡인데, 어째 김개코 피처링이 평이 조금 더 좋습니다. 김연우의 시원시원하게 뻗어가는 고음도 좋지만, 개코의 비음 섞인 지저분한 목소리가 가지는 묘한 매력이 더 먹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 둘다 좋아요. 개코 피처링 버전은 히든트랙이라 그런지 인터넷에 잘 없더라고요. 저야 CD 리핑해서 열심히 들었습니다만 헤헤. 



3. 그땐 그땐 그땐




 '이제는 진짜 새로운 만남

시작해도 되는 때라고 말은 한다만'


 이때가 슈프림팀의 전성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땡땡땡이 한차례 차트를 쓸어버리고 난 뒤에 나와서, 이번에도 역시 차트를 쓸어버린 트랙이었죠. 브아솔의 영준 피처링이라 이름만 듣고서는 꽤나 의아했었는데, 나름 케미스트리가 좋았습니다. 

 랩 스타일은 LBA에서의 모습과 닮았으면서도, 그보다 진보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슈프림팀 타이틀곡들 중에서 완성도/쌈디와의 밸런스/보컬의 적절성/대중성 모두를 가장 잘 잡은 트랙이었다고 말하겠습니다. 물론 저는 노래방에서 부르기 편한 땡땡땡을 더 좋아하지만. 




4. Trouble




'난 땡볕 아래서 한 대 피고 
오늘을 시작해. 담배 연기를 마신 후의 현기증.'



 다시 e-sens의 옛날 시절 랩입니다. VJ가 아직은 에로틱 랩을 거리낌없이 뱉던 때의 랩이죠.

 이 때 이센스의 랩에 사람들이 라임이 있느니 없는 뭐니 논쟁이 조금 있곤 했었는데, 라임이 있어요. 눈에 명시적으로는 안보여서 그렇지. 그때만 해도 이런 랩 구성은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었겠죠. 

 시기적으로 trouble이 Leavin' 보다 먼저 나왔는데, 어딘가 묘하게 둘이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자친구가 다시 생기긴 생겼는데, 어째 뭔가 그 전의 연애랑 달라진 것 같지가 않은. 그리고 너가 나에게 '별'이 되어주지 못하는 만큼, 나 역시 너에게 별이 되어주지 못하는. 결국 보통의 존재일 뿐이란 것을 서로 발견하는 순간입니다. 그러하기에 작은 관계변화에도 민감할 수 밖에 없고, leavin'을 향해 가는 것이겠죠. 


 이야기를 돌려보자면 b-soap의 피처링에 대해서 논란이 조금 있었습니다. 이런 얼음장같이 차가운 비트에 비솝의 비음 잔뜩 섞인 숨소리는 완벽한 미스캐스팅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센스의 힘 쫙 뺀 래핑은 상대적으로 더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 셈이고요. 또는 비솝의 피처링이 있었기에 이 노래가 균형을 찾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요. 뭐 평가는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5.  원래 마지막 문단에 '이센스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가 됩니다!' 같은 식상하고 진부하고 고리타분하고 뻔한 멘트로 끝내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끝내려고요. 이센스가 랩을 잘하는 건 맞지만, 아직까지 어떤 'classic'한 앨범을 내지는 못했거든요. 앞으로는 솔로로 활동하게 될 것 같은데, 그 앨범은 진짜 좀 기대가 되요. 이센스 같은 타입이 한번 독기 품으면 진짜 장난 없는 그런 타입이니깐요. 그러므로 


'이센스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