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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

오늘은 내 생일이다. 우리는 '힘들어 죽겠다'같은 말들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그게 정말 죽고싶다는 얘기는 아니기에 태어났고 살아있음을 기념한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축하와 사랑의 말들을 전해받는다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날이다. 오늘도 그랬다.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웃음과 좋은 시간들이 쌓인 말을 건네주었고, 엄마 아빠와 오랜만에 길게 이야기를 나누며 이제는 내가 정말 어른이 되었구나, 같은 이야기를 함께 했다. 
나는 작년 생일 이후 일년 동안 어떤 한 해보다도 생일을 자주 떠올렸고, 생일을 떠올리며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던 것같다. 내가 살아있음을 가장 기쁘게 느끼고 감사하는 날이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죽음의 구멍이 되었다. 삶은 언제나 죽음과 손잡고 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도무지 일렬로 정리될 수 없는, 나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보다도 낯설고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타인이 될 수 없음을 가장 강렬하게 느꼈다. 그 좁혀질 수 없는 거리감이 나를 당황하게 했다. 동정이나 부채감도 어딘가 다 모자란 말들이었다. 사실 나는 그래서 나조차 쉽게 잊혀질까 걱정했다. 나는 무서워서 동영상 하나도 제대로 켜지 못했다. 버거웠다. 한 가운데 뛰어들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만큼, 내가 도무지 정리할 수 없는 그 공간만큼, 세월호 사건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한여름 나는 오르세 박물관에 앉아 다쳐서 부은 발목을 하고 생존자 학생들이 2박 3일 동안 부은 발로 서울로 걸어갔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평소에 대화를 하다가도 "가만히 있어"라는 말이나 "잊지 않을게"같은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움찔했고, '침몰'과 '익사'같은 단어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읽을 수 없는 말이 되었다. 

사실 처음 이 사건에 대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때 생각한 것보다 그 잔영은 생각보다 길고 짙게 남겨지고 있었다. 단순한 '불쌍함'이나 '삶은 원래 그런것'이라는 말을 꺼낼 수 없는,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 이상한만큼의 어떤 공간, 그만큼의 여백. 며칠 전에서야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사서 조금씩 읽기 시작하면서, 그 이상함이 어디에 놓여있는 지를 다시 생각했다. 유가족 한명 한명이 하는 이야기마다 꼭 나오는 내용이 있다. 오전에 '전원 구조되었다'라는 말에 안심하고 학교에 도착했고, 시신이 하나 둘씩 나올 때까지만 해도 남의 일이었던 것이, 나의 일이 되고 모든 것이 서서히 와르르 무너져간 일. 뉴스에 보도되고 책임자들이 와서 하는 말을 누구보다 먼저 쉽게 믿었지만 그 뒤에도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일. 무언가를 물어도 정해진 매뉴얼이 없고 '자기도 모른다'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일. 왜 아무도 배 가까이에 가려하지 않았는지, 누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물음이 사라지지 않는게 아니고 하나씩 더 쌓여가는 일. 사람들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 보상, 처벌, 상담이 말만 존재하고 있는 허탈감. 그들이야말로 누구보다 먼저 가장 쉽게 국가와 사회를 믿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굳이 그들이 아니더라도, 우리 중 누구였더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일은 발생하기 마련이고 인간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중학교 교과서에서부터 배우던 내용이었으니까. 

성경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어떤 종교적 함의를 제외하고도 믿음, 소망, 사랑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필수불가결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은 믿음과 소망을 빼앗겼다. 다른 사람들은 정부를 욕하거나 잘못되었다고 말을 하다가도 다시 직장과 학교를 가고, 대중교통과 병원을 이용하고, 도보를 걸어간다. 우리는 길을 걷다가 보도가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길은 무너졌다. 병원이 그들의 아픔을 알아준 것이 아니라 상처를 들쑤셨다. 사회 안에 있는 직장과 학교가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들과 희생자들이 함께 쌓아온 지난 세월을 잃으면서 동시에 앞으로 무엇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다가올 세월이 사라졌다. 그들이 도로로 나오고 광화문에 앉아있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더 이상, 이렇게는, 전처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나는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세월호의 유가족들이 살고있는 그 사회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라고. 우리가 함께 탄 배에 구멍이 났고, 이걸 다함께 나서서 고치지 않으면 그 누구라도 또 구멍에 빠지게 될거라고. 그리고 사실 이미 우리는 그 날들을 많이 지나오지 않았나. 바람이 불지 않았지만 다리가 무너졌고, 멀쩡히 서 있던 백화점이 무너져 내리는 일을. 수족관에 소풍을 나갔던 유치원 아이들이 화재로 죽어가는 일을. 개인을 보호하고 '잘 살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하는 시스템과 국가가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모습을. 나는 작년보다도 올해에 더 많이 울었다. 내가 너무 무서워서 차마 열어보지 않고 도망다녔던 이야기들을 이제서야 접한 것도 있지만, 아직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이 모든 것들이 '다른 무엇을 위해 조종되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나. 왜 이것이 그냥 잊고 넘어갈 일이 되어야 하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인데. 잘 사는 것도 아니고 생존을 위한 것인데. 적어도, 사는 것이 죽은 것같은 상태는 아니어야 하지않나. 이 상태에서 잊고 용기를 내서 다시 살아가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그 기반이 무너졌는데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커다란 생각들이 있었지만 지금 내가 가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한다. 나는 이 사건에 관한 변화가 생길 때까지, 그리고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 한 가운데에서도 끊임없이 말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언어의 미끄러짐과 부질없음을 강하게 느끼지만 그럼에도 말할 것이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를 계속해서 가다듬어 다시 말해야 할 것이다.내 생일이니까, 생일에는 좀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할 수 있지, 같은 어린 아이같은 뻔뻔함으로 나는 끝없이 말할 것이다. 내가 오늘 느꼈던, 태어나고 자라고 변하면서 느꼈던 감사함을 느끼게 되지 못한 아이들과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그걸 함께 지켜볼 수 있었던 사람들을 위해 계속해서 말할 것이다.  그리고 묻는다. 함께 말할 수 있지 않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