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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배설>/작희

#13 들기름으로 부친 계란후라이

원고번호 2
작희

들기름으로 부친 계란후라이


겨울의 집 냄새는 고소하고 따뜻하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아직 사춘기에 접어들지 않은 동생들의 몸 냄새와 섞이고 음식 냄새와 섞여 밥 뜸 내음처럼 모닥이며 피어오른다.

사람 마음이 어찌나 간사한지, 공항에서 칼국수가 먹고 싶지 않느냐고 묻던 엄마의 말은 만류하고 미국 땅을 밟자마자 한국에 있을 때에는 손도 안 댔던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 물론 내가 칼국수를 먹고 싶다고 대답했어도, 나는 탑승 마감 시간을 1분이나 넘겨 보딩을 했기 때문에 아마 식사를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공항에 오면, 던킨도너츠를 아메리카노와 함께 사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한식을 다함께 먹고 나를 배웅하는 것도 퍽 즐긴다. 그렇게 떠밀리듯 미국에 와 놓고 보니, 집에 있을 때는 만두 아니면 잘 먹지도 않던 한식--그것도 집에서 만든 심심한 한식--이 그렇게도 먹고 싶은 것이다.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것은 참 밑도 끝도 없는 일이다. 이는 비단 이민자의 생활에만 국한되는 말이 아니다. 돈이 없으면 먹고 싶은 것이 더 많아지고, 평소 잘 먹지 않던 것도 다 먹고 싶다. 흥부전을 읽으면, 구멍 낸 멍석을 뒤집어쓴 흥부네 자식들이 나는 이것, 나는 저것, 하며 먹고 싶은--한동안 어디 가서 먹어 보지도 못했을--음식들을 줄줄이 늘어놓지 않던가. 

가난한 중 웬 자식은 풀마다 낳아서 한 서른남은 되니, 입힐 길이 전혀 없어 한방에 몰아넣고 멍석으로 쓰이고 대강이만 내어놓으니, 한 녀석이 똥이 마려우면 뭇녀석이 시배(侍陪)로 따라간다. 그 중에 값진 것을 다 찾는구나. 한 녀석이 나오면서

"애고 어머니, 우리 열구자탕(悅口子湯)에 국수 말아먹으면."

또 한 녀석이 나앉으며, "애고 어머니, 우리 벙거지를 먹으면."

또 한 녀석이 내달으며, "애고 어머니, 우리 개장국에 흰밥 조금 먹으면."

또 한 녀석이 나오며, "애고 어머니, 대추찰떡 먹으면."

"애고 이녀석들아, 호박국도 못 얻어 먹는데 보채지나 말려무나."

~ 흥부전 중에서

용돈이 떨어지면 유독 모 카페에서 파는 페이스츄리가 그렇게도 먹고 싶고, 집에서 떨어지면 잘 먹지도 않던 한식이 그립다. 엄마도, 옛날에 돈이 정말로 없을 때에는 정말 좋아하지도 않는 빙과류의--어석어석하게 얼음이 씹혀나는, 이를테면 스크류바나 생귤탱귤 류의 얼음과자--아이스크림이 그렇게도 먹고 싶어, 그거 하나만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단다. 동생들은 멀끔히 나와 엄마를 쳐다보기만 했고, 나도 그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엄마는 왜, 너도 그럴 때가 있니? 용돈 떨어졌을 때? 하며 웃고는 밥을 마저 먹었다.

그러다가도 막상 또 그렇게 먹고 싶었던 것들을 먹을 수 있게 되면 식욕은 온데간데 없는 것도 참 희한한 일이다. 식욕과 사랑은 어찌 보면 비슷한 상태인데, 플라톤은 향연에서 사랑(에로스)이 결핍과 풍족 사이에서 태어난 중간자적 신이라고 했으니, 그거야말로 향수적 식욕(nostalgic appetite)의 성질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부자라는 게 별 게 아니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값을 생각하지 않고 사 먹을 수 있는 게 부자라는 말을 들었는데, 부자도 먹고 싶은 게 그리 많을까 조금 궁금하기도 하다.

어쨌든, 식욕이든 무엇이든 둘째치고, 짐을 푸는데 미처 빨지 못하고 온 후드티 한 벌에서--집에서 줄창 입어대던--들기름 냄새가 솔솔 풍겨와 나도 모르게 왈칵 울음이 났다. 옷을 붙들고 방 가운데 서서 찔끔찔끔 울다가 짐을 결국 다 풀지 못했다. (그 옷을 지금도 입고 있는데, 간밤에 샤워를 하여 샴푸 냄새로 조금 희석이 되었어도 들기름 냄새가 여전하다.)

옷에서 왜 들기름 냄새가 나는가 하면, 나는 아침에 밥 대신 '계란후라이'를 먹는데 (계란부침 또는 계란프라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지만 할머니가 부쳐 주시는 계란을 계란프라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 밥도 안 먹는 손녀에게 뭔가 더 해주고 싶으셔 할머니는 늘 계란을 두 개 들기름에 훌훌 부쳐 주셨다. 내가 계란을 부칠 때에는 팬에 얆게 물을 한 겹 깔고 기름 없이 부쳐 내곤 하는데, 할머니가 들기름으로 부쳐 주신 계란 후라이가 이번 겨울에는 그렇게도 맛이 좋았다.

겨울의 한국은 먹을 것이 참 많다. 이럴 때 한국에 몇 주 더 있을 수 있었다면 붕어빵을 더 많이 사 먹었을 것 같다. 모든 것이 비싸졌다기에, 여섯 마리 정도 받겠거니 하고 붕어빵 삼천 원 어치를 샀다가, 열 마리(천 원에 세 마리, 한 마리는 덤)가 담긴 커다란 봉투를 안고 집에 가 동생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사실 열 마리라고 해 보아야 우리 집에서는 그저 한 사람이 한 마리씩 먹고, 조금 더 배고픈 세 명이 한 마리씩을 더 먹으면 '쫑'이 나는 양이기는 하다.)

일전에 플러스 원 씨가, 그릇에 남은 허머스를 피타 빵에 싹싹 묻혀 먹는 나를 보고는, 입맛이 많이 국제적이 되었다고 한 적이 있다. 나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만 해도 입이 짧은 편이었는데, 그건 정말 입맛이 까다로워서라기 보다는 집에 해 먹는 반찬이 몇 가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먹는 생선의 종류도 가장 독특했던 것이 기껏해야 두어 번 먹어 본 통통한 병어였고, 계란후라이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밥상에 오르는 그런 집이다, 우리 집은. 먹고 싶은 것을 다 적어 보라고 했을 때 열 살 난 막내여동생이 순식간에 써 내려간 60가지 음식 중 가장 별나다 싶은 것이 큰오빠가 급식으로 먹어 본 연어스테이크였고, 엄마도 몇 개월 전에야 겨우 월남쌈이라는 음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나 역시도 집에서 먹는 반찬이 전부인 줄 알고 그저 살다가 미국에 와 이것저것 먹어 보게 된 것이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이스켄더가 가져온 초콜릿도 먹어 보고, 터키의 다른 이스켄더(카자흐스탄의 이스켄더는 투르크계이기 때문에 같은 이름이다)가 가져온 터키 젤리도 먹어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사실 김치와 밥을 싫어하는 것을 빼면 내 입맛은 천상 한식 입맛인 것도 같다. 만두라면 사족을 못 쓰고 (교자여서는 안 되고 만두여야 한다), 감자를 큼지막하게 썰어넣은 수제비나 칼국수를 좋아한다. 산이 많은 추운 지방에서 먹었을 법한 것들을 즐겨 먹는다. 샐러드도 좋지만 나물도 좋고, 파스타보다는 거친 식감에 깨를 동동 띄운 막국수가 좋다. 양념도 없이 소금만 살짝 뿌려 구운 송이버섯도 좋고, 솥 가득 찌는 고구마나 단호박도 더울 때나 식었을 때나 생각만 해도 한없이 흐뭇하다.

우리 집 반찬이라면 그저 계란이었다. 어떤 기름을 쓰든 계란후라이는 늘 밥상에 올랐고, 올 겨울의 계란후라이가 들기름으로 부쳐 낸 것이었을 뿐이다. 물론 먹고 싶은 한식 음식 하나를 고르라면 들기름 계란후라이와 만두 중 하나를 고르겠지만서도, 굳이 들기름 계란후라이가 먹고 싶은 것은 아니다. 허머스나 버마 식 갈릭누들도 아주 잘 먹을 자신이 있지만, 그럼에도 굳이 꼭 들기름 계란후라이를 제목으로 삼은 것은 그 향 때문이다. 냄새야말로 가장 집요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보고 담아 둔 것은 금방 마음속을 빠져나가도, 코끝을 스치는 작은 냄새 조각에도 인간 기억의 센서는 작동하게 그렇게 요상하게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는 모양이다.

외식을 아무 곳에서나 하는 것을 참지 못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플러스 원 씨의 역할이 크다. 기껏 별러 데려간 수제비 집이 닫았을 때 그는 정말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만큼 미안해했고, 낙지와 산낙지 중 고민하다가 기왕이면 비싸도 맛있는 것을 먹자며 산낙지를 주문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무거나 파스타' 류의 메뉴 선택을 나는 정말이지 안 좋아하고, 정말 친한 사이가 아니면 가까운 데서 아무거나 먹자, 하는 논리도 잘 허용이 안 된다. 하지만 집 밥만큼이야 아무거나이면 어떻단 말인가.

스물 세 살에는 한식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질펀하게 구워 먹는 삼겹살이나 갈비는 말고 (사실 언제부터 그런 것이 한식이라 말할 수 있었을까), 진짜 한식 밥상--집 밥이라고도 하는 그런 것--이 그립다. 고구마 한 바구니가 놓인 식탁에 앉아 들기름 계란후라이에 파래김과 밥을 먹을 수 있으면 그저 행복할 것 같다.

태평양을 가운데 끼고 차안과 피안 사이에 몸이 걸려 버렸는데, 그 몸에 와인이 돌고 스며 몽롱하다. 한숨 자고 일어나, 오렌지나 한 알 까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