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배설>/심연
그렇게 사랑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엔
nanunsaram
2013. 12. 11. 06:41
아니 이런! 생각해보니 그냥 남의 게시판에다가 쓰면 그 사람 이름으로 글이 써지는 거군. 배설은 상당히 위험한 지반에 기초해있다. 하지만 조용히 내 이름 아래에 글을 쓴다.
오래된 연인이라는 말은 오랫동안 사귀어온 상대를 뜻하거나, 기억 한 가운데 조용히 묻혀있는 그(녀)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봤자 한끗 차이 아닌가? 전자하고 헤어져서 몇 해쯤 지나면 후자로 전환되니까. 이런, 시간의 흐름을 너무 가볍게 말해버렸다. 허나 망각은 시작되고 나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래서 이제 나는 오래된 연인에 대해 기억하지 못한다.
방금은 독일어에 대해 생각해봤다. 몇 해 배우다가 대학 와서는 손도 대지 않던 것을, 이상한 바람이 불어서 다시 공부하기 시작한 게 불과 일 년 전의 일이다. 단어도 얼마 외우지 않고 연습도 많이 안 했는데 높은 급수 시험에 붙어서 실력이 많이 늘은 것 같지만 정작 학습량은 하찮을 정도로 적은 것 같다. 그래도 작년을 생각해보면 내가 참 독일어를 사랑했구나 싶다. 열심히 하진 않았어도 참 사랑했으니까 그렇게 들여다보고 있었구나. 요즘 내가 식상한 얼굴로 매일 마주하는 독일어가 사실은 내 옛 연인이었구나.
연인들은 아마 지옥이나 천국 어디에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디서든 유쾌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기회는 일반적으로 다시 주어지지 않지만, 어쨌거나 나를 옭아매고 있는 독일어에게만큼은 다시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사랑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엔 늦는 게 보통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