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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

잡글 -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시도 1. 신, 혹은 자연. 하나의 실체를 허용하는 스피노자의 주장은 내게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오직 단 하나만이 있고, 우리 모두 그 안에 있다. 만물은 곧 신이며, 단 하나의 실체다. 존재에 피곤함을 느껴왔던 내겐 정말로 반가웠던 주장이었다. 존재한다는 것은 언제나 피곤한 일이다. 그리고 그건 너무나도 무겁다. 그러나 이러한 피곤은 생각해보면, 결국 비-존재가 있기에 성립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언젠가 나의 존재는 끝난다. 점점 이 존재는 끝을 향해가고,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마치 마모되는 톱니바퀴처럼, 그렇기에 나의 수레바퀴도 점점 굴러가고, 천천히 굴러가며, 언젠가 멈출 예정이기에 나에게 한 없이 피곤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단 하나의 실체, 단 하나의 존재만이 있다면, 그리고 그 외엔 아무.. 더보기
연애연애연애연애연애연애연애연애를해야한다 (Feat. Privilege of Being, by Robert Hass) 0. - 언니는 평생 인터넷 없이 사는 거랑 평생 연애 안 하는 것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뭘 택할 거야. - 연애 안 하면 나 죽어. 난 죽을 때까지 연애를 할 거야. 연애연애연애연애연애연애연애연애를해야한다. 연애는 나의 형이상학. 필멸의 시간 속에서 불멸의 환상은 가히 꿀맛이다. 사실 오비드의 은 필멸과 불멸 사이의 음담패설이다. 죽지도 늙지도 않기에 하루 종일 섹스를 하거나 질투를 하거나 섹스와 질투의 후환을 열심히 처리하는 -- 열심히 똥을 치우는 -- 신들과, 인간처럼 자신의 필멸성[mortality]에 항시 자각하고 있지 않기에 신들과 진배없이 욕망을 채우며 살아가는, 필멸자이지만 불멸의 싸이키[psyche]를 지닌 축생들에 대한 지극히 인간적인 판타지. 냐하항. 1. - 우리 엄마가 너 맘에 .. 더보기
음담패설에 대해 음담패설에 대해 음담패설을 하지 않은 지 너무도 오래되었다. 섹스에 대한 얘기가 더 이상 야한 얘기가 아니게 된 지금은 아마 음담패설이라는 것 자체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유희에 대한 염원을 담아 음담패설의 정의와 기능과 문맥을 탐구해 보기로 한다. 음담패설[淫談悖說]은 '음탕하고 덕의에 벗어나는 상스러운 이야기'를 뜻한단다. 요컨대 그것은, 상상 속 어떤 청자가 그것이 '덕의'에 어긋난다고 판단할 법한 이야기여야 하며, 음담패설의 즐거움 중 상당한 부분이 그 도덕적 금기성에서 우러나온다. 그 이야기는 또한 음탕해야 한다. 즉, 화자와 청자의 생각에 모두 음란하고 방탕한 이야기 -- 일종의 일탈의 의미마저도 담겼다고 볼 수 있는 -- 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다. 다만 저 정의에는 한 가지 문.. 더보기
삶과 삶의 조우 삶과 삶의 조우 절필도 금주도 가족여행 덕에 실패다. 블랙러시안을 만들어 마시려다가 깔루아 값을 보고 포기한다. 보드카에 진저에일을 섞어 들이킨다. 물에 물을 섞은 듯 싱겁다. C에 대한 동생의 첫인상은, 그러니까 --"와, 난 나보다 머리 큰 사람 처음 보는 것 같아."하 참 나. -- 먹을 것 천지인 퀸시 마켓까지 구경을 가서도 네 식구들은 끝끝내 시장 맞은편의, 네 생각으로는 턱없이 비싼 (김치볶음밥에 17달러라!) 한식당으로 향했다. 통역과 주문을 위해 벽 쪽 대신 홀과 가까운 구석에 앉아 너는 웨이트리스에게 주문을 넣었다. 김치볶음밥 세 개, 돌솥비빔밥 하나. 싫다는 너의 만류에도 네 접시에 어머니는 비빔밥을 다섯 숟가락이나 덜어 준다. 밥을 젓가락으로 입 안에 깨작깨작 밀어넣으니 익숙한, 고소.. 더보기
배설을 너무 오래 지연하였기 때문에 배설하고자 한다. 그때 우리가 꾼 꿈은 무엇의 꿈이었을까? 꿈이란 어떤 식으로 정의할 수 있는 세계란 말인가. 꿈이란 형식만 정해져 있고, 내용은 변화무쌍하다. 순간적으로 고정해서 볼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어떠어떠한 꿈을 가졌다고 말할 때 그것은 꿈의 사진을 찍은 것과 같다. 실제 꿈이 가지고 있는 내용은 그 순간에 변화하고 있다. 배설을 통해 우리는 일단 쓰고자 했다.지면이 필요했다는 말이다. 개인 블로그여서는 안 되는 거였나. 그나마 쓸만한 티스토리 블로그는 연결성이 낮은 까닭에 개인 블로그로는 고독했을 것이다. 대화가 안 되면 대화의 시도라도 되어야 하는데 개인 블로그는 독백이고 잘해야 방백이다. 익명의 독자도 좋지만,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글을 읽어준다는 것이.. 더보기
새해라면 절필 새해라면 절필 새해에는 이 언어를 버리고 싶다고 너는 막연히 생각했었다. 아무도 불러 주지 않는 네 본명조차 낯설어진 요즈음에도 너는 모국어로 연애를, 식사를, 모호한 감정들을 인지한다. 모국어를 잊으면 다소 건조한 연애쯤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C는 네게 유화 도구를 한 벌 -- 나중에 C의 화가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C가 난데없이 메시지를 보내 유화를 그리려면 뭐가 필요하냐고 물었었단다 ("붓이랑 물감 말고 또 뭐가 필요한가? 하길래 내가 그랬어요, 자, 종이랑 펜을 준비하고, 내가 말하는 것들을 모조리 받아 적어.) -- 선물해 주었다. 미술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너는 무턱대고 페인팅나이프를 하나 집어들어, 젯소를 바른 캔버스에 울트라마린 물감을 두텁게 얹었다. 캔버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