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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

말과 행동 말의 뜨거운 함정. 성탄절이다. 부대의 밤에는 성탄이 없다. 금요일 퇴근하면서 나는 그저 좋은 주말 되시라는 말을 했다. 성탄절은 대체로 잊혀진 분위기다. 물론 종교 시설은 다르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미사에 참여하여 인간의 미천함에 대해 생각했다. 신부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어느 수녀님이 잠자리에 들려 하는데 새가 창문에 와 부딪혀 떨어졌다. 가서 도와주려는 마음에 손을 가까이 하니 도망치더란 것이다. 이 손길이 새에게는 더욱 무서운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내가 새였으면 도와줄 수 있었을텐데, 아쉬워하면서 그냥 돌아왔다.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리하여 헐벗은 아기의 모습으로 구유 위에 누워야 했다.(구유를 잘 모르는 우리는 낭만화하겠지만.. 더보기
ps. 눈의 물이 눈물인지 눈물인지는 도무지 모른답디다, 우리말의 장모음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데요 추운 날이면 여지없이 품고 안고 어루만지고 비루먹은 개처럼 피가 나도록 핥을 기억이 있다는 것 참 다행 아녜요 내겐 그래요 그렇네요 시간의 기념비처럼, 얼어붙은 돌에 혀를 갖다 대어 떼어내려면 혀의 절반이 떨어져 나가는 시간들처럼 당신이 그립지 않아도 그 시간들이 아름다워요. 당신과 나는 찬 혀에 섭씨 칠십오 도의 단팥을 가져다대어 화상을 입고는 했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요, 성에는 겨울의 곰팡이랍니다 나는 곰팡이 낀 몸을 양 팔로 감싸안고 박제가 되어요 일, 이, 삼, 사, 오. 어쩌면 육 또 어쩌면 칠, 추억이 얼어붙는 불 같은 시간을 당신께 소포로 보내요, 만져지나요 점도도 점액도 없는 결정체로 보아하니 .. 더보기
오픈 유어 --- 오픈 유어 --- 열쇠 돌아가는 기척에 고양이가 벌써 방문 밖으로 뛰쳐나간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너는 깜짝 잠에서 깨어난다. - Hey. 두어 시간 눈을 붙이고 일어나 작업을 할 생각에 컨택트렌즈도 빼지 않고 잠이 들어 시야가 침침하다. 혀도 뇌도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아 너는 영문을 모른 채 흐릿한 실루엣에 초점을 맞추려 애쓴다. 스탠드 불빛에 찬 겨울밤 냄새과 네가 잘 아는 모직 코트 냄새가 몽롱히 섞여 온다. 그림자가 익숙한 몸짓으로 옷을 슥슥 벗어내고 네 머리카락을 쓸어넘겨 뺨과 이마에 입을 맞춘다. - 아, 나 오늘 여기서 잘 거야. Q가 친구들을 데려와서 파티를 하는 중인데 시끄러워서 잠이 들 수가 없어서. 깨워서 미안해. 금방 양치하고 올게.C가 화장실에 간 사이 너는 꾸역꾸역 몸을 .. 더보기
우리 헤어지는 연습 우리 헤어지는 연습 우리 언젠가 헤어져야 하잖아요. 헤어지는 연습을 해 봐요. 요즘 - 너는 이상한 증상을 보이고 있다. 이사할 일이 두려워 살림살이 늘리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하던 사람이 삶의 부속물을 모아들인다. 중간 크기의, 모교 엠블럼이 찍혀 있는, 머그 하나에 커피도 라면도 오트밀도 케이크도 담아 먹던 네가 종이학 문양이 아로새겨진 예쁜 찻잔 세트에 눈길을 주고 세일 기간을 기다리고, 가구며 주방기구를 사들인다.또 어딘가로 떠나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 이것들을 짊어질지 내버릴지 너는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인류가 만들어낸 거의 모든 도구는 불완전한 육체를 보완하기 위한 연장[延長]이라 보아도 좋다. 많은 음식을 몸에 한꺼번에 저장할 수 없기에 외장-위장인 그릇을 만들었고, 포식동물의 송..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