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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면 연애처럼 사라질 아득한

서로를 끌어안은 채 잠을 청하는 두 사람의 팔다리에 대한 고찰


A proposal:

누군가에게 안긴 채 잠든다는 것은, 일정 몸집 이상으로 자라난 생명체에게는 다소 불편한 일이다.

사지를 어떻게 엮고, 또는 한쪽으로 접어 치워 둔다 해도, 팔과 다리가 한두 개쯤 남아도는 느낌일 수밖에 -- 전에 아주 잠깐 만났던 누군가는, 이런 느낌의 한 부류를 "t-rex syndrome"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한 팔을 뻗어 상대를 감싼다면 다른 팔은 두 몸 사이의 간격에 맞추어 움츠릴 수밖에 없다는 것. -- 없다. 그것은 비단 팔뿐만 아니라 다리에, 또 가끔은 목과 머리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플라톤은 인간과 우로보로스의 차이는 인간의 팔다리에 있다고 말했다. 둥근 우로보로스가 그 자체로 완전한 우주의 형태라면, 인간의 팔다리는 -- 다소 우아하지 못한 모양새로 -- 바깥 세상을 향해 뻗어 있으며,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시공간의 순환 속에 멈추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어디론가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단다.

요컨대, 사랑 후 휴식의 순간에조차, 우리는 우아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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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로보로스는 아마도 동반의 존재 역시 필요로 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너는 오랫동안 우로보로스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너는 다른 몸에게 안겨 잠드는 것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섹스를 마친 남자의 몸에서는 묘한 냄새가 나기 마련이고, 그 몸이 네 수면의 자리로 준비한 그 한 치의 공간은 -- 더운 체온에 체취가 섞인 것으로 더할 나위 없이 찝찝하게 여겨진 탓에 -- 너는 늘 오 분에서 십 분의 의무적 포옹이 끝나는 즉시 그 한 치의 불쾌함에서 빠져나와 시트에 몸을 감싼 채 잠을 청했다.

아마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섭섭하게 여겨지기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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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네 개인적 수면 자체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적어도 너는 매번 등을 돌려 벽을 바라보고 잠드는 일이 배반[背反]이라고 믿어 본 적은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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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네가 팔다리의 구조와 위치를 고민하게 된 것은 -- 잠결에라도 너를 다시 끌어다 안고서야 잠이 드는 C의 잠버릇 때문이다. 여러 아침 C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눈을 뜨고 난 이후로 너는 잠을 청하기 전 네 팔과 다리의 존재를 잠시 잊어버리는 연습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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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팔다리의 존재를 잊어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렇게 해서 몸의 불편함을 잊는 것은 아마 살과 피와 뼈로 존재하는 일의 법칙에 어긋나는 일일 것이다.

이전의 너는 뼛속까지 -- 정확히는 '뼈까지' -- 사랑 받는 것을 꿈꿨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몸까지도 아마 사랑할 테고, 몸을 육욕으로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면 살갗에서 발라낸 뼈에마저도 지극한 애정을 담아 키스할 수 있어야 한다는 뒤틀린 애정관'이라고 그것을 정의했었다.

팔다리의 존재를 잊는 것은 아마 망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일지도 모른다. 일단 잠들어 있는 순간에 너는 네 팔다리를 인지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다.


이제 너는 애인에게 네 뼈에 입을 맞추어 줄 수 있느냐고 묻지 않는다.

뼈와 살과 목숨이 온전히 붙은 그 무언가가 어쩌면 살갗에서 발라내어진 뼛조각보다 불편하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페티시즘은 고문 같을지언정 비교적 쉬운 -- 그리고 한없이 비겁한 -- 사랑의 형태다.

어쩌면 너는 뼈와 살과 숨으로 사랑하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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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두려움의 상실이 나이 든 사람의 둔감함으로 이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다만 이제 너는 몸의 불편함과 불쾌함을 견딜 수 있게 된 모양이고, 그것은 아마도, 좋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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